누구보다 아꼈던 큰 아들이다. 알고보니 아내가 결혼 전 만났던 남자의 아들이다. 없는 살림에 11년 동안 남의 아들을 키운 셈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남자는 외식할 때도 굳이 첫째 아들을 제외시킨다.
영화 '허삼관' 속 이야기다. 배우 하정우가 출연과 연출을 겸한 작품으로, 지난 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허삼관(하정우) 가족의 이야기다. 세 아들 중 중 첫째 일락(남다름)에 얽힌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 가족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일락을 내치지도, 품지도 못하는 허삼관은 아들을 상대로 속좁은 행동만 한다.
원작은 중국 작가 위화의 베스트셀러 '허삼관 매혈기'다. 국내 사정에 맞춰 각색하면서 1960년대 충남 공주로 배경을 옮겼다. 삼촌의 일을 돕던 허삼관이 우연히 매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첫 장면부터 전반부는 원작을 충실히 따라간다. 허삼관, 허옥란(하지원) 등 원작 속 중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고, 앙칼진 송씨(전혜진)나 속물 혈두(장광) 등은 책에서 나온 듯한 캐릭터들이다.

음식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먹방'(먹는 방송)으로 유명한 하정우이기에 더욱 눈에 들어온다. 원작에선 돼지간 볶음과 황주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허삼관은 피순대와 막걸리로 보혈한다. 만두와 붕어찜은 가족애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소박하지만 뭉클함을 안긴다. 고구마, 강냉이, 도시락 등 영화 곳곳에서 하정우의 '먹방'을 감상할 수 있다.
'허삼관'에는 하정우 표 코미디가 가득하다. 진지한 순간에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허삼관과 허옥란이 갈등하는 신에서 "왜 고추를 발로 차느냐"는 허옥란에게 허삼관은 "손으로 했다"고 대꾸하는 식이다. 허삼관의 말투는 진지한 듯 유쾌한 실제 하정우의 그것을 닮아 있다. 엉거주춤한 걸음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오줌을 참아내는 장면 등도 웃음을 자아낸다.
1978년생 동갑내기 하정우와 하지원의 합도 좋다. 하정우는 "더위를 먹을까봐 힘을 쓰는" 우직한 남자 허삼관을 제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강인한 캐릭터를 한동안 주로 선보인 하지원은 여성스러운 면모를 부각시킨다.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미모가 돋보인다. 실제론 미혼인 두 사람의 부성애와 모성애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일락 역의 남다름은 '허삼관'의 발견이다. 13세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탁월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가족을 잃은 비극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면, '허삼관'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애끓는 감정으로 웃기고 울린다. "아버지 가지마세요"라며 목놓아 외치는 장면에선 허삼관뿐만 아니라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 잡는다.
허삼관의 노년까지 등장하는 원작과 달리 후반부는 1960년대에서 마무리된다. 원작에서의 문화혁명은 허삼관 가족이 겪는 가난이나 고통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영화에선 새로운 설정이 이를 대신한다. 허삼관의 부성애를 극대화시켜주는 장치로, 123분의 전체 상영시간 중 가장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허삼관'은 배우 하정우가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감독 하정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괜찮은 가족영화라는 점은 틀림 없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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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