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대한항공-위메프와 다른 점
OSEN 이우찬 기자
발행 2015.01.11 22: 28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OSEN=이슈팀] 땅콩회항부터 백화점 모녀까지 지난 해에 이어 2015년 새해까지 연일 '갑질 논란'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갑'과는 거리가 먼 유항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가 화제로 떠올랐다.
유일한 박사는 지난 1895년 평양에서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전자회사 제너럴 일렉트릭(GE)에 회계사로 취직했던 유 박사는 조국 독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고 1919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과 한인자유대회에 참석,당시 재미 중국인들을 겨냥한 숙주나물 통조림이 성공해 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유일한 박사는 지난 1926년 미국 최초의 동양인 여의사인 중국인 아내 호미리와 함께 귀국했고 서울 종로에 유한양행을 설립, 결핵약과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출시했다.
1938년에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유 박사는 더욱 적극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펼쳤다. 유일한 박사는 지난 194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국방경비대(맹호군)를 창설해 직접 특수요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광복 후 귀국한 유 박사는 기업가로서 유한양행을 국내 2위의 제약사로 키웠으며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 뒤 196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사내 조직에 친인척이 있을 경우 파벌이 형성, 회사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 친척들을 회사에서 모두 내보냈다.
1971년 3월11일 작고한 유 박사는 유언장을 통해 자녀들에게 "주식을 재단에 기증하고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하라"고 당부했다고.
한편 유한양행은 유 박사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념해 '유일한 상'을 제정했다. 지난 1995년 유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상은 2년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성취한 인사를 추천 받아 유일한상 심사위원회에서 선정, 시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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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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