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리뷰]‘오늘의 연애’ 짐꾼 이승기-족발녀 문채원, 돌풍주의보 발령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1.12 08: 03

흥행 돌풍주의보 발령 ‘오늘의 연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인터넷에서 1인 방송 ‘날씨의 여신’을 운영하는 VJ 현우(문채원)는 꿈에 그리던 방송국 기상캐스터가 된다. 예년과 비슷한 온화하고 포근한 날보다 번개 치고 태풍 불 때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직업 영향 때문일까. 방송국 간부인 유부남(이서진)과 눈이 맞은 그녀의 사랑은 변화무쌍한 먹구름을 동반한 짜릿함의 연속이지만 그만큼 위태롭고 불온하다.
 그런 현우를 18년간 짐꾼으로 보필하며 가슴 졸여온 초등학교 동창 준수(이승기)는 애써 다른 여자들을 기웃거려보지만 매번 퇴짜 신세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으니 진도를 못 나갈뿐더러, 연애 스킬 또한 순진하다 못해 그가 가르치는 초딩 수준. 시도 때도 없이 현우의 콜을 받아 소주와 족발 친구가 돼줘야 하고, 만취한 그녀를 업고 안전 귀가까지 책임져야 하는 대리기사 신세다.

더럽고 치사해 노예 생활 청산을 벼르지만, 심장 가운데 박힌 큐피드의 화살을 뽑지 못 한 채 머리를 쥐어짜던 준수. 결국 용기 내 현우에게 고백하고 동침도 시도하지만 그럴수록 박탈감만 커질 뿐이다. 심장 뛰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로맨티스트 현우와 기다려주고 지켜주는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준수의 엇갈린 러브 바이오리듬은 과연 동기화될 수 있을까.
노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죽어도 좋아)을 시작으로 에이즈 환자와 농촌 총각의 순애보(너는 내 운명), 루게릭병에 걸린 시한부 인생과 장례지도사의 새드 러브(내 사랑 내 곁에) 등 심도 깊은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온 박진표 감독이 20대 청춘을 위한 사랑 레시피를 들고 6년 만에 귀환했다. ‘오늘의 연애’는 ‘상처 받지 않으려고 썸만 타지 말고, 깨지고 부서지는 심장 터질 것 같은 진짜 사랑을 해보라’는 감독의 외침 같은 현실 공감 로맨스다.
손예진 하지원을 잇는 차세대 여우 중 늘 첫 손에 꼽혀온 문채원은 마치 200미터 개인 혼영을 보는 것처럼 구간마다 다채로운 재능과 매력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좋아하는 유부남의 짧은 메모 한 장에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고, 그를 온전히 차지하고 싶어 하는 오피스 와이프의 간절함부터 연하남 앤드류(정준영)와 밀당을 즐기는 모습, 자신만 바라보는 준수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까지 입체적인 캐릭터의 내면을 체화해 보여준다.
언제부턴가 로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여주인공 만취 주사 연기야 조금만 오버하면 재미와 만족도를 높일 수 있지만, 대사나 구체적 몸짓 없이 흥분되고 쓸쓸했다가 회한에 휩싸이고 마는 감정 롤러코스터를 118분 안에 보여주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문채원의 섬세한 내면 연기가 빛나는 건 억지스럽지 않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현우의 심리와 고민의 기승전결이 점층 구조로 차곡차곡 쌓이며 설득력 있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보다 높은 집중도를 요하는 스크린 연기에 출사표를 던진 이승기도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끔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노력형 천재라는 수식처럼 문채원과의 호흡도 좋았고, 무엇보다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다. 활자 속 역할 설명과 감독의 디렉션에 의지하지 않고, 영화에 나오지 않는 준수의 성장과 콤플렉스, 엔딩 후 펼쳐질 이후 인생까지 상상하고 연구해낸 결과이자 성과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누구나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게 된다. 인생의 조단역, 노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덕분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섬유유연제 냄새마저 조말론 향수처럼 느껴지고, ‘너한테 자꾸 손이 간다’며 새우깡이라 불려도 낭만적인 시처럼 귀가 황홀해지게 마련이다.
‘오늘의 연애’는 소중한 누군가로 인해 내 삶의 의지와 영역이 확장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사랑의 실체를 세밀하게 그려낸 순도 높은 로코다. 리얼하면서도 순간순간 판타지처럼 다가오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맛보게 되는 건 순전히 박진표의 힘이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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