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는 걸, 진짜 잘해내는 것. 쉬운 듯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스크린 진출에 나서는 이승기는 바로 이 과제에 도전했다. TV 리모컨을 돌리다 보게 되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티켓 값을 지불하고 극장까지 찾아가서 봐야 하는 매체. 많은 TV 스타들이 안착하기 어려워했던 매체이기도 하다. 이승기는 드라마와 예능에서 갈고 닦은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해 바로 이 스크린에 도전장을 냈다. 영화가 매우 잘 나왔다며 흡족해 하는 이승기의 표정에선, 첫 개봉을 앞둔 주연배우의 긴장감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OSEN - 영화 '오늘의 연애', 어떻게 보셨어요? 첫 주연작인데.

이승기 - 재밌게 봤어요. 많이 웃었고요.
OSEN - 본인이 유도했던 만큼 웃음이 터지던가요?
이승기 - 터진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포인트가 좀 다르더라고요. 한강에서 막 화를 내다가 푹 꺾여서 소심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전 그런 코미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썼는데 관객은 안웃더라고요. 바로 뒤 대사에서 웃음이 터지던데, 좀 의아했어요.(웃음)
OSEN - 시청률 보증수표와 티켓 파워는 또 다르잖아요. 자신 있어요?
이승기 - 아, 많이 다르죠. 그래도 영화는 내용이 중요하잖아요. 입소문도 있고, 배우들의 케미도 좋을 수 있고. 다행히 케미를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OSEN - 시나리오가 꽤 들어갔을텐데, 왜 '오늘의 연애'를 택했어요?
이승기 - 그동안은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못했어요. 1년에 드라마 한편씩 하다보니까 영화까지만 하면 1년 내내 연기만 해야되잖아요. 그 리듬을 깨기 어려웠어요.
OSEN - 그런데 '오늘의 연애'는 어떻게?
이승기 - 그걸 깨고 싶을만큼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박진표 감독님이 그려온 사랑이 좋았어요. 지고지순한 감정이 좋잖아요. 전 썸이 싫어요. 그래서 감독님 감성이랑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OSEN - 그런데 만약, 연기력으로 좀 더 인정받고 싶었다면 다른 캐릭터를 맡았을 것 같기도 해요.
이승기 - 악역도 들어왔어요. 완전 악역. 살인마!
OSEN - 어울릴 수도.(웃음)
이승기 - 아니에요. 전 피 많이 나오는 잔인한 영화는 별로 안좋아해요. 아직 제가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대중이 저한테 원하는 것도 그렇고요.
OSEN - 대중이 원하는 선택이라는 건, 무난한 선택이기도 하잖아요?
이승기 - 큰 변화를 추구하려다 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이미지를 사랑해줬는데 그걸 벗어나려고 하면 무리수죠. 잘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많은 분들이 절 로코 이미지로 봐주시는데, 사실 로코라고 할 만한 작품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외엔 없어요.
OSEN - 그런데 왜 커플 연기를 많이 한 거 같죠?
이승기 - 제가 연기를 달달하게 했나보죠.(웃음) 전 사실 로코 장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OSEN - 그럼 뭐 좋아해요? 좋아하는 영화 세개만 꼽아봐요.
이승기 - 1번은 '라이온킹'.
OSEN - 네에?
이승기 - 왜요? 그 작품 안에 연극의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어요. 완벽한 애니메이션이라구요.
OSEN - 자, 나머지 두개는요.
이승기 - '달콤한 인생'. 제가 느와르 장르를 좋아해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 하루에 두세편씩 보다보니 너무 많아서 오히려 몇개만 꼽기가 어렵네요. 나머지 하나는 '오늘의 연애' 할래요. 개봉하면 몇번 더 보려고요.
OSEN - 그런 말 있잖아요. 영화 한번 찍으면, 계속 영화만 하고 싶어한다더라.
이승기 - 그 말이 뭔지 알겠어요. 좋죠, 아무래도. 제 베스트를 뽑아줄 수 있는 환경이니까요. 그런데 드라마는 또 활어같은 매력이 있어요. 감정을 대사로 표현하다보니까 대사하는 재미도 더 있고요.
OSEN - 포스트 차태현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이승기 - 좋죠. 너무 좋죠. 독보적이라고 봐요. 로맨틱한 멜로부터 눈물나는 감동까지 다 가능하잖아요.
OSEN - 그런데 흔히 차태현에 대해서도 '너무 한가지 이미지로 가는 거 아니냐'는 질문, 자주 하잖아요. 그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토로하기도 하던데.
이승기 - 그 마음, 저도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요.(웃음) 나는 배우니까 한가지 이미지 싫어, 그러면서 막 악역 분장하면 이도 저도 아니지 않을까요? 물론 '이거 잘하니까 이거만 할거야'는 아니지만 내 욕심과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과 절충점은 가져가자는 주의예요. 충분히 데이터가 쌓이고 하면 더 큰 도전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축복이잖아요. 영화 보면서 남성성 두드러지고, 눈빛으로 연기하고 그런 거 보면 저도 막 하고 싶죠. 그런데 그런 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거고. 전 제가 잘할 수 있는 장기부터, 사실 그 장기를 계발하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매튜 맥커너히가 로맨틱 코미디에선 인정을 덜 받다가도, 다른 영화에서 완전 인정받잖아요. 그렇게 폭 넓게 갈 수 있는 거겠죠. 언젠가는.
OSEN - 반대로, 무겁게 갔다가 다시 가볍게 돌아오는 케이스가 더 어려울 수 있겠네요.
이승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걸 해냈잖아요!
OSEN - 공부 좀 하셨는데요?(웃음)
이승기 - 요즘 특히 영화를 많이 보고 있어요.
OSEN - 이승기씨를 두고 흔히 '노력형'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연예계에는 그야말로 '신들린 가창력', '신들린 연기력'도 있는데. 그런 가수나 배우를 보는 기분은 어때요?
이승기 - 늘 동경하죠. 천재를 늘 동경해요. 타고난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씩 생각은 바뀌고 있어요. 옛날에는 천재가 한수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노력형도 천재처럼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고 천재도 하찮게 되는 거 봤고요. 재능은 서비스예요. 진짜 무기는 노력이에요. 세상이 타고난 사람만 잘되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역전도 가능해야죠.
OSEN - 어떤 계기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승기 - 그냥 스며들듯이. 천재는 인정하고요. 인정해야죠. 다만 노력형이 열심히 하면 천재만큼, 오히려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려고요. 저는 물론 천재형이 아니죠. 그래서 더 빛을 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가 정말 존경하는 이순재 선생님도 자기는 노력형이라고 하세요. 윤여정 선생님도 대본을 정말 100번 읽으신대요. 천재를 너무 부러워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정말 위안이 됐어요. 이성민 선배님도 정말 좋아하는데, 그분도 늘 뭔가를 연구하세요. 언젠가 제가 연기 조언을 요청드렸더니, 뭔가를 잔뜩 써오셨더라고요. 뭐든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시는 게 원동력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구나, 늘 명심해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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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