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감독'. 윤제균 감독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식어다. 그는 이미 지난 2009년 '해운대'로 1,145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지난 13일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윤제균은 1,000만 영화를 두 편이나 연출한 최초이자 유일한 감독이 됐다.
'두사부일체'(2001)로 화려하게 데뷔한 윤제균 감독은 이후 '색즉시공'(2002) '1번가의 기적'(2007) 등으로 대중성을 인정 받았다. 이젠 두 작품이나 1,000만 관객을 모았으니, 눈을 감아도 흥행 요소가 그려질 법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낭만자객'(2003) '7광구'(2011)는 아니지 않았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JK필름 사무실에서 진행된 윤제균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흥행론'을 들어봤다.

◇ 간절함은 통한다
'국제시장'은 그에게 특별한 영화였다. 지금껏 그가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 중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녹아 있다. "이게 내 팔자라고"라고 외치는 주인공 덕수는 장남에 외아들로 태어난 윤제균 감독을 닮아 있었고, 덕수와 영자란 주인공들의 이름은 윤제균 감독의 부모님 성함이었다. '국제시장'을 두고 아버지에게 받치는 헌사라고 표현했다.
제작사 JK필름으로서도 '국제시장'은 중요한 영화였다. '해운대'(2009)가 큰 성공을 거뒀지만 '댄싱퀸'(2012) 이후 3년 동안 수입이 없었다. 윤 감독은 "그동안 빚을 얼마나 많이 졌겠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국제시장'이 잘 되지 않았으면 영화를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라며 "'국제시장' 덕분에 빚은 다 갚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국제시장'을 잘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많았다. 촬영 현장에서 "'윤제균'스러운 건 벗어나고 싶다"고 농담조로 말한 까닭이기도 했다. 윤 감독은 "윤제균이란 브랜드가 좋게 말하면 재미와 감독, 나쁘게 말하면 웃음과 신파 아니냐. 이번엔 뻔한 코미디나 신파를 자제하려고 했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더니 "더 노력해야겠다"고 덧붙였다.
건강한 긴장감을 위해 새로운 시도도 했다. 이병우 음악감독을 제외하곤 나머지 제작진은 새로운 스태프들이었다. 윤 감독은 "최고의 스태프를 기용하되 한 번도 호흡을 맞춰 보지 않은 이들을 중심으로 했다. 그래야 현장에서 긴장하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막내 스태프들의 이름까지 외우는 것으로 유명한 그다. 윤 감독은 "그것 때문에 이름 외우느라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 영화에는 영화의 팔자가 있다
"정치적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근 윤 감독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국제시장'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부터다. 영화는 근현대사 그 중에서 경제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것이 지나친 미화라는 지적이었다. 제작진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국제시장'은 논란으로 인해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윤 감독은 처음부터 정치적 색깔이 들어간 에피소드는 제외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사건 중에 치열했던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경제적 사건들을 찾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야기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전쟁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독일까지 간 광부·간호사들이 벌어온 금액이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였다. 요즘 삼성그룹 매출이 GDP의 4%쯤이다. 엄청난 돈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윤 감독은 '국제시장'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받아 들였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만든 이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평가들에 대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표현했다. "영화를 만들고 내놓으면 영화만의 팔자가 생긴다. 모든 것은 관객의 몫"이란 그는 "다만 의도에 대해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가 참 극적이지 않나. 너무 아픈 이야기도 있고,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만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다양한 것 같다. '국제시장'을 해외영화제에 내놓으면 '잘 만든 휴먼드라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인만이 느끼는 한이 있는 것 같다."
◇ 자만할 때 가장 위험하다
윤 감독에게 '흥행'이 무엇이냐 물으니,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른 후 "이건 확실하다"며 "관객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할 때 가장 위험하다"고 답했다. "이 바닥에 굳은 자는 없다"는 그의 생각을 들려줬다. 스타감독과 톱스타가 만든 영화라고 해도 모든 결과는 개봉을 해봐야 안다는 뜻이었다. 윤 감독 역시 뼈저린 실패를 몇 차례 맛봤던 터,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결국 본질로 돌아간다고 했다. '좋은 콘텐츠가 통한다'는 평범한 진지를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역대 다양성 영화 흥행 성적 1위를 기록한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를 꼽았다. 윤 감독이 개봉 첫 주 가장 두려웠던 상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호빗'이 아니라 당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님아'였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 관객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투자자나 평론가는 무섭지 않은데 관객은 무섭다. 절대 속일 수가 없다. 정말 뛰어난 작품인데, 홍보나 마케팅이 안되서 망한 작품은 거의 없지 않나.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은 전 세계 관객 중 제일 똑똑하다. 아무리 흙속에 진주가 묻혔어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jay@osen.co.kr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