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많이 기다렸지만 실망은 없었다. ‘펀치’ 김아중의 각성이 이뤄졌다. 진실을 마주한 후 김래원을 돕는 조력자가 됐다. 전개상 조금은 더딜 수밖에 없었던 김아중이 예열을 끝내고,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한방을 날렸다.
김아중은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정의로운 검사 신하경을 연기한다. 전 남편인 박정환(김래원 분)과는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다. 정환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력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라면, 하경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도를 지키는 검사다.
시한부 인생을 살며 고통스러운 정환에게 하경은 어찌 보면 무거운 짐과 같은 존재. 하경이 원리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환의 뒷배였던 이태준(조재현 분)에게 칼날을 겨눌수록 정환의 인생이 고달파졌다. 하경의 실수가 있다면 미처 태준과 크게 다르지 않는 위선자 윤지숙(최명길 분)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 지난 12일 방송된 8회는 하경이 지숙이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태준과 손을 잡았고 정환과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복수 역시 합리적이다.

그동안 하경은 의도하지 않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였다. 그렇다고 막장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무력하고 짜증이 유발되는 인물까진 아니었지만 극의 전개상 시청자들의 가슴을 치게 하는 순간이 여러 있었다. 정환이 하경과 그의 가족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하경은 정의를 실현한다는 신념하에 일을 꼬이게 했다. 그랬던 하경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정환이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믿기 힘든 진실을 알고도 정환에게 위험을 가하는 야비한 조강재(박혁권 분) 앞에서 표정을 숨기고, 지숙이 정환을 구제할 수밖에 없는 카드를 내밀며 독한 기운을 풍겼다. 그동안 인간성은 좋지만 어딘지 모르게 믿고 일을 맡기기에는 정치적인 계산이 서툴러 허점이 있었던 하경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 셈이다. 정의를 지키겠다는 진정성으로 똘똘 뭉친 하경이 정환의 도움을 받아 악의 축 척결에 나선 것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 중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김아중이 연기하는 하경은 여타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달리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는다. 강력한 ‘펀치’를 맞은 후 차근차근 자신이 내리칠 한방을 준비하는 하경의 모습은 매섭게 독해서 믿고 보게 만든다. ‘펀치’라는 드라마는 극중 인물들이 선하든 악하든 행동의 당위성이 있어 감정 개입에 있어서 주인공에게만 몰리지 않는다. 거미줄 얽히듯 세밀하게 갈등 구조를 만드는 박경수 작가의 힘인데, 자칫 잘못하다보면 주인공들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 배우인 김래원과 김아중은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해 대선배들의 연기 향연 속에서도 자신들의 연기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데 길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김아중은 다른 극중 인물들에 비해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예열의 시간이 길었음에도 탄탄하게 무장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8회에서 정환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후 눈물을 쏟는 장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극도로 분노한 순간에도 철두철미한 검사답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가운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한 연기를 하며 안방극장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감정을 절제하는 성격인 하경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극의 흐름을 잡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하경이 정환이 뇌종양 수술 실패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 후 강재에게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접근해 대화에서 숨은 진실을 잡아내는 장면이 긴박감 넘쳤던 것은 김아중의 빼어난 캐릭터 분석과 절제된 감정 연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다가 한순간에 눈물이 터진 하경을 설득력 있게 담았다. 캐릭터가 배우와 만나 안방극장에 무사히 안착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오래 기다린만큼 하경이 정환의 조력자가 된 8회는 ‘믿고 보는’ 배우 김아중의 진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한편 ‘펀치’는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던 검사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서 겪게 되는 운명적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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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