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차' 이승엽이 말하는 한국야구의 빛과 그림자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5.01.13 13: 09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은 프로 21년차 선수다. 권용관(한화)과 더불어 10개 구단 선수 가운데 프로 경력이 가장 풍부하다. '국보급 투수' 선동렬부터 '괴물' 류현진까지 모두 상대해본 유일한 타자다.
그리고 이승엽은 각종 국제 대회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리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앞장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영광의 순간마다 그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승엽이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의 프로야구는 어떤 모습일까.
"20년 전에 비하면 프로야구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데뷔 초반에는 투수들의 구종도 직구와 슬라이더 뿐이었다.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를 만나면 거의 못칠 정도였다"는 게 이승엽의 말이다. 이어 그는 "지금은 구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입의 투수들이 많아졌다. 타자들의 수준도 마찬가지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시행된 뒤 국내 타자들의 파워도 확실히 좋아졌다"고 엄지를 세웠다.

선수들의 자기 관리도 더욱 철저해졌다. 이승엽은 "과거에는 술과 담배를 하는 선수들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FA 제도가 생겼고 전 경기를 생중계하니까 선수들의 몸관리가 더욱 철저해졌다. 자비를 들여 해외에서 훈련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이러한 추세라면 선진국과 같은 야구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관중 매너도 확실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그라운드를 향해 병을 투척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많았다. 이승엽은 "그땐 홈경기에서도 욕을 많이 먹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다르다. 가족 단위 팬들이 늘어나며 야구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팬들이 없다면 선수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승엽의 말이다. 그는 "고액 연봉을 받고 TV에 나오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팬들의 힘"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쳐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이승엽은 "프로야구 인기에 비해 아마추어의 현실은 너무나 빈약하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구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발전 속도는 더딘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이승엽은 일부 젊은 선수들의 의식 변화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외모보다 실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후배들이 조금 더 야구에 몰입했으면 좋겠다. TV 중계가 많아지고 인기가 늘어났다고 정말 스타가 된 건 아니다. 인기와 실력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야구장에서 최고의 실력을 만들면 분명히 인기는 따라오게 돼 있다. 야구를 잘 해서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야구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선수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선수들이 외적인 치장보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인다면 더욱 발전하지 않을까".
이승엽은 팬들에게 사인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로 꼽힌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이승엽이 사인에 인색하다'는 볼멘소리도 자주 나온다. 이승엽은 이에 대해 "선수로서 팬들에게 사인을 잘 해드려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팬들 입장에서 선수들의 사인을 받는 건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어린이팬들에게는 무조건 해주려고 한다. 선수가 팬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듯 팬들도 마찬가지다. 광고 전단지와 같은 아무 종이 한 장 내밀고 사인해달라고 하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과연 그 사인을 소중히 간직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 경매 사이트에서는 이승엽의 사인볼이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승엽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굉장히 불편하다. 어찌 보면 내가 파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 부분이 너무 싫다.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건데 사인볼을 매매하는 건 정말 아니다. 가끔씩은 사인볼에 대한 거부감마저 들기도 한다. 늘 사인을 받는 분이 받는다"고 아쉬워 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엽은 "팬들께서 아쉬워 하시는 만큼 올 시즌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인하는 등 팬들께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 팬들도 최소한의 배려는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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