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하느님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은 흥행에 대한 질문에 이처럼 말했다. 영화 '해운대'(2009)에 이어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 등극을 앞두고 있는 그였다. 1,000만 영화를 두 편이나 연출했지만, 베테랑 감독에게 영화는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분야였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겸손해서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이라고 덧붙였다.
개봉 5주차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고 있는 '국제시장'이지만, 처음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호빗'에 밀리는 듯 했다. 순항하나 싶더니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대다수의 관객들은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뜨거운 가족애에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 천만 클럽 입성을 앞두고 있는 윤제균 감독을 만나 '국제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또 한번 천만 클럽에 들게 됐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모든 분들께, 특히 관객 분들께 감사하다. '해운대' 이후 잘된 작품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그전에는 나름대로 탄탄하게 왔는데, 부침이 심했다. 제작사(JK필름)도 나도 '국제시장'이 잘 안되면 영화를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영화 제작사는 흥행이 안 되면 돈 들어올 데가 없지 않나. '댄싱퀸'(2012) 외에는 3년 동안 돈을 번 게 없었다. 얼마나 빚을 많이 졌겠나."
= 촬영 당시 배우들에게 "'윤제균'스러운 건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고 들었다. 잘 만들어야 겠다는 간절함이었나.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고 싶었다. 우선 돌아가진 아버지한테 바치는 헌사니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두 번째는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다. 또 역사적인 사실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겐 무겁지 않게, 잘 전달했다. 윤제균이란 브랜드가 좋게 말하면 재미와 감독, 나쁘게 말하면 웃음과 신파 아니냐. 이번엔 뻔한 코미디나 신파를 자제하려고 했는데…더 노력해야겠다."
= 한 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일상적인 장면은 거의 없고 강렬한 사건들로 이뤄져 있다. 신파를 의도하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자극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정치적 논란하고도 똑같은 얘긴데,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만든 사람의 의도와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보는 이가 신파라고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의도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요즘 관객들 수준이 높다. 감독이 웃기겠다고 해서 웃고, 울리겠다고 해서 울리면 그 감독은 천재다."
=절제했다고 하지만, 슬프다는 평이 많지 않나.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우리나라 근현대사 자체가 참 슬프다. 극적이다. 너무 아픈 이야기도 있고,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만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다양한 것 같다. 두 번째는 근현대사에 대한 공감이다. 한국인들만이 가진 한이 있다. 알게 모르게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한을 느낀다. '국제시장'을 해외영화제에 내놓으면 '잘 만든 휴먼드라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인만이 느끼는 한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고생한 이야기 아닌가. 고생을 한 부모도 알고, 그걸 지켜본 자식들도 안다. 그렇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정서를 만드는 데 음악도 큰 공을 했다.
"'국제시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다. 이병우 음악감독과는 이번이 3번째 작업이다. 현장에서 건강한 긴장감을 갖기 위해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스태프들로 팀을 꾸렸다. 그런데 음악감독은 그대로였다. 연출이 부족한 부분을 따뜻하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감싸줬다."
=막내 스태프까지 이름을 외우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 이름을 다 외웠나.
"그것 때문에 이름 외우느라 고생했다.(웃음)"
=일부 젊은 세대는 '국제시장'이 '부모세대의 잔소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힘든 세월을 우리가 겪어 다행'이란 취지의 대사가 특히 그렇다.
"부모는 다 똑같지 않겠나. 특정 세대가 아닌, 요즘 부모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그 대사는 그 시대 부모님들만의 대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도 내 자식에게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나도 20대부터 가장이 돼서 학비, 생활비를 직접 다 벌고, 신혼생활을 반지하에서 했다. 내 자식은 좀 더 가난하지 않은 환경을 가졌으면, 내가 했던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부모라면 다 그렇지 않나. 그 대사 자체는 특정 세대의 부모보다는, 앞으로 탄생할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덕수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 꿈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청춘이 지나갔다. "이게 내 팔자라고"란 대사가 슬프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대사다. 내가 실제로 그랬다. 장남에 외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홀어머니 모시는 장남과 누가 결혼하려고 했겠나. 그게 그냥 '내 팔자'라고 생각했고,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부모가 되기 전엔 또 모르는 마음이다. 첫 아이를 낳고 유모차 살 돈이 없었다. 100일이 지나고, 지인이 유모차를 선물해줘서 그것을 사용했다. 요즘에도 유모차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 나만의 트라우마다. 그 유모차는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자녀들은 '국제시장'을 보면서 아빠의 고충을 짐작하던가.
"지루하다고 하더라. ('해운대'처럼) 쓰나미 같은 건 안 나오냐고.(웃음)"
=의도와 달리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는데.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정치의식이나 사회비판을 위한 게 아니다. 일부에선 왜 정치가 빠졌냐, 왜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없냐고도 하시는데, 이 영화는 평범했던 나의 아버지 얘기를 하려던 작품이었다. 돈이 없어서 대학도 못가고,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자식 안굶기게 하려고 노력했던 분들에 대한 헌사다. 영화를 만든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영화를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를 뿐,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줄거리를 구성하는 큰 사건으로 흥남철수,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찾기가 등장한다. 이들 사건은 어떻게 선택했나.
"흥남철수와 이산가족 찾기는 고민이 없었다. 6.25를 빼곤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야기할 수 없지 않나. 거기가 시발점이었다. 이산가족 찾기가 드라마적으로 결론을 지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였다. 사건을 찾는 게 어려웠다. 우선 정치적인 색깔의 사건은 제외했다. 경제적인 사건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찾았다. 그중에서 짧은 시간 안에 치열했던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을 찾았다. 19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이 한국으로 보낸 월급이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였다. 요즘 삼성그룹 매출이 GDP의 4%쯤이다. 엄청난 돈이었다."
=조선시대나 삼국시대보다 근현대는 많은 이들이 세세하고 기억하고 있어 오히려 영화화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차기작에서 1980년대나 1990년대를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근현대사를 찾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런 건 아니다. '국제시장'은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오히려 더 먼 과거로 가면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흥행이나 완성도를 떠나서, 감독으로 자랑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 즉 부모님 세대 관객에게 칭찬을 받은 점은 보람되다."
=차기작은 결정됐나.
"이런 저런 프로젝트가 있다. 예전에 기사화된 '템플스테이'는 글로벌 프로젝트라 협의 중에 있고, 중국 프로젝트도 있다. 1980년대나 1990년대를 다루는 국내 프로젝트도 있고. 시기적으론 내년부터 준비에 들어가겠지만, 무엇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두 편이나 1,000만 넘어섰다.
"전혀. 1,000만이 상징적인 숫자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거나 부담감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짐은 하게 된다. 훨씬 더 겸손하자고."
=이제 어떻게 하면 흥행된다라는 흥행 공식이 보일 것 같다.
"이건 확실하다. 관객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할 때 가장 위험하다. 이 바닥에 굳은 자는 없다는 게 철칙이다. 스타감독이네, 톱스타네 해도 또 모르는 게 영화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 겸손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투자자나 평론가는 무섭지 않은데 관객은 무섭다. 절대 속일 수가 없다. 정말 뛰어난 작품인데, 홍보나 마케팅이 안되서 망한 작품은 거의 없지 않나. 우리나라 관객들은 전 세계 관객 중 제일 똑똑하다. 아무리 흙속에 진주가 묻혔어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극중 끝순이(김슬기)는 나훈아랑 결혼한건가. 고 정주영 회장, 앙드레김, 이만기, 남진 등 실존인물들이 화제가 될 때 나훈아는 언급이 안되더라.
"처음 듣는 질문이다. (웃음) 끝순이는 나훈아와 닮은 남자와 결혼한거다. 덕수는 남진 팬이지 않나. 그래서 덕수가 끝순이 결혼식 장면에서 으름장을 놓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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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