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감 넘치는 이야기로 인기몰이 중인 ‘펀치’에는 유독 음식을 먹는 장면마저도 의미심장하다. 보통 가족드라마에서 먹는 장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데, SBS 월화드라마 ‘펀치’는 살벌한 갈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극 초반 짜장면을 먹는 장면은 이태준(조재현 분)과 박정환(김래원 분)의 단단한 신뢰감을 드러내고,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등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윤지숙(최명길 분)과 태준의 역학 구도를 설명하는데 홍어라는 삭힌 음식을 꺼냈다.
지난 12일 방송된 ‘펀치’ 8회는 서로의 치부를 알고 있어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법무부장관 지숙과 검찰총장 태준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식사 장면이 그려졌다.

이날 식사 장면은 두 번이었는데, 두 번 모두 홍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 홍어를 지숙이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 역학구도에서 누가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한식집에서 삭힌 홍어를 두고 서로의 의중을 탐색했다. 첫 번째 만남은 지숙에게 주도권이 있었다. 태준이 지숙에게 홍어 한 점을 권하지만, 지숙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태준을 옭아맬 수 있는 진술서가 있다는 말에 지숙은 홍어를 다시 태준의 접시에 갖다놓았다. 태준이 성의로 건넨 음식을 돌려준다는 것은 적대감의 표시이자, 협력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이 진술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정환을 석방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숙은 다시 다급해졌다. 주도권이 다시 태준에게 쏠리게 됐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한식집에서 조우했다. 이번에도 홍어가 차려졌다.
지숙은 홍어를 자신의 접시와 태준의 접시에 놓은 후 태준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태준에게 화끈한 자금을 안겨주는 대신에 정환을 풀어달라는 제안이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홍어를 먹지 않았던 지숙은 “이게 통합이다”면서 홍어를 먹었고, 태준은 만족스러운 듯 자신 역시 홍어를 집어삼켰다. 태준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지숙이 홍어를 먹는 장면은 ‘펀치’에 물고 물리는 관계를 한번에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펀치’는 이처럼 유독 음식으로 인물간의 갈등의 향방을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대사 뿐만 아니라 음식이라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치마저도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하는 박경수 작가의 고차원적인 접근법은 ‘펀치’의 재미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S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13일 오후 OSEN에 “홍어는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됐다”면서 “홍어를 먹느냐, 안 먹느냐만 봐도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9회에는 지숙이 태준과 파스타를 먹으러 가는 장면이 나올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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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