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래원은 '펀치'에 없었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박정환만 있었다.
지난 13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펀치'(극본 박경수, 연출 이명우) 9회에서는 법무부 장관 윤지숙(최명길)과 손을 잡은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을 압박하는 박정환(김래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박정환은 윤지숙을 찾아갔다. 앞서 윤지숙은 이태준에 덜미가 잡히면서 그간 뜻을 같이해 온 검사 신하경(김아중), 정국현(김응수)과 갈라섰다. 이에 박정환은 이태준을 택한 윤지숙에게 "선택을 책임지라"고 경고했다. 그는 "당신은 내 빈소에 오지 못할 거다. 당신은 감옥에 있을 테니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션캐피털 회장 김상민(정동환)에게 접근했다. 박정환은 김 회장에게 이태준이 정계 인사에게 뿌린 30억 원의 내역을 주면, 오션캐피털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박정환이 입수한 오션캐피털 세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신하경은 이태준의 형수를 세금 탈루 혐의로 체포했다. 궁지에 몰린 이태준은 오션캐피털을 포기했다.
변수는 윤지숙이었다. 윤지숙은 김 회장을 찾아가 사면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김 회장은 윤지숙 편에 서 이태준의 비리에 대해 진술했다. 윤지숙은 이 내용을 동영상에 담았다. 이태준은 윤지숙의 아들이 연루된 병역비리 브로커의 인터뷰 영상을 확보했던 터. 두 사람은 서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쥔 채 같은 배에 탔다.
이태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정환을 몰아붙였다. 죽음이 임박한 박정환의 몸 상태를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다. 조강재(박혁권)는 박정환의 손발이 될만한 이들을 쳐냈다. 박정환도 강수를 결심했다. 자신이 이태준의 비리에 일조했다는 것을 직접 밝히기로 한 것이다.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흔들림 없는 박정환이었지만, 실은 가장 불쌍한 남자였다. 가진 것 없었기에 그는 언제나 가족을 위해 살았다. 그 방법이 정당하진 않았지만, 그로선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도 그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전 아내 신하경과 딸 예린이(김지영)을 위한 인생을 택했다.
종종 등장하는 멜로신들은 박정환의 매력을 더했다. 이혼한 사이지만 박정환과 신하경 사이엔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죽음이 다가오면서 둘은 더욱 애틋해졌다. 이날도 박정환은 "내가 선물한 안경으로 세상을 보라"며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이태준 앞에선 날카롭고 당당했지만, 가족 앞에선 부드러운 가장이었다.
그 중심엔 김래원이 있었다. 박정환은 무표정한 얼굴 뒤에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감춰놓은 인물이다. 초반에는 목표를 위해 전 부인도 내치는 냉혈한이었다. 복잡한 설정을 지닌 캐릭터임에도 김래원은 섬세하고 몰입도 높은 연기로 비극적인 '어른 남자'의 캐릭터를 구현했다.
또한 야윈 몸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뇌종양 환자의 외형을 완성했고, 차가운 눈빛과 목소리는 캐릭터의 명석함을 드러냈다. 통증에 고통 받는 장면이나 시간의 흐름 앞에 처절해지는 모습, 예린이를 향해 짓는 환한 미소 등은 그가 숨겨놓은 인간적인 면모였다. 시청자들이 어느새 박정환을 응원하게 됐다.
'펀치' 방영 전 김래원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전작의 영향이었다. 영화 '리틀 마이 히어로'(2013)는 흥행에 실패했고, 드라마 '천일의 약속'(2011)은 상대역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 사이 그의 이미지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우였고, 배우답게 오로지 연기로 승부했다.
'펀치'를 통해 진가를 발휘 중인 김래원은 오는 21일 영화 '강남1970' 개봉도 앞두고 있다. 영화까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돌아온 전성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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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