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이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화면 장악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극적 장치도 조재현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한다. 얼굴을 화면에 들이미는 듯한 ‘클로즈업’이 오히려 그의 연기를 더욱 정밀하게 볼 수 있어 소름 돋게 만들고 있다.
조재현은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매회 ‘연기 배틀’에 임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연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카리스마를 뿜어대는데, 조재현이 가진 힘은 압도적이다.
조재현이 연기하는 이태준은 웃으면서 협박하고, 그 어떤 긴박감 넘치는 갈등에서도 농담을 던지며 더 매서운 내공을 자랑하는 인물. 한 마디로 ‘쓰레기’ 같은데 어쩐지 정감이 가게 만들며 시청자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박정환(김래원 분)을 지독히도 괴롭히지만 덮어놓고 욕을 할 수 없게 해서 하소연하기 힘들다는 게 ‘펀치’ 시청자들의 기분 좋은 투정. ‘우리 행님(형님)’, ‘정화이(정환이)’ 등 그의 말투에 드러나는 투박한 사투리가 이유인 동시에, 태준이라는 인물을 단편적으로 담지 않는 조재현의 숨은 연기 의도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준은 권력과 부에 대한 야망이 큰 동시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사로잡혀 있다. 한없이 강하면서도 가족 앞에서는 다정한 이중적인 면모를 조재현이 인간미가 뚝뚝 떨어지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면근육을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하는 조재현의 연기는 입을 벌리고 보게 되는 명장면이다. 연기 호평이 두 말 하면 잔소리인 이 배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연기 응집력은 태준이라는 인물이 화면에서 팔딱팔딱 살아숨쉬게 만든다.
박경수 작가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비유법을 많이 활용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유치하게 다가올 수 있다. 허나 조재현은 이 같은 비유를 맛깔스럽게 살리면서 감정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재주를 뽐낸다. 그리고 감정 연기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극적 장치도 한 몫을 한다. ‘펀치’는 유독 배우들의 얼굴을 가까이 잡아당겨 찍는 ‘클로즈업’이 많다.
이 같은 ‘클로즈업’은 시청 피로도를 높일 수 있는 부담이 있다. 대신 갈등 장면의 긴박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펀치’가 자주 사용한다. 다만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 변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연기 내공이 없다면 작은 실수도 ‘발연기’로 비쳐지는 단점이 있을 수 있는데, 조재현은 ‘클로즈업’이 더 소름 돋는 ‘명품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응집해서 분노를 폭발하는 신이든, 이마 근육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복수의 칼날이 느껴지는 조재현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지난 13일 방송된 9회에서도 오션캐피털을 집어삼키기 위해 김상민 회장(정동환 분)에게 협박을 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태준은 형 이태섭(이기영 분)이 일군 오션캐피털의 실소유주인 상민의 재산을 노렸다. 태준의 표정은 살벌하다기보다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하듯 웃음기가 있었다. 웃으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태준의 특기는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밀가루 사다가 만두피 빚고 만두가 됐다. 이 만두가 밀가루 사장 것이냐 만두 사장 것이냐. 회장님한테 밀가루 사다가 내가 만두피 빚고 형님이 만두소를 만들었다. 누구 것이냐?”라고 낮게 읊조렸다.
이 장면은 웃으면서 깊게 패인 조재현의 주름이 ‘클로즈업’으로 부각되며 안방극장을 몰입하게 했다. 분명 드라마는 60분여간 방송되는데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는 말을 조재현이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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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