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어디까지 불행해질 수 있는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걸까. 여동생은 식물인간이 된 지 오래, 아내는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났다. 여기에 추가로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tvN 월화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 속 장희태(엄태웅 분)의 이야기다.
지난 13일 방송된 '일리 있는 사랑'(극본 김도우, 연출 한지승) 14회도 장희태의 수난기였다. 뒤늦게나마 아내 김일리(이시영 분)의 힘들었던 부분까지 이해해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화해를 요청했으나 일리는 이를 거절했다. 이제껏 "용서해달라"고 빌던 모습과 돌변한 모습에 장희태는 또 답답함에 빠져들 수 밖에.
집에 돌아와 식물인간인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여동생 장희수(최여진 분)를 돌보던 희태는 어머니 고여사(이영란)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일리가 바람을 피고 집에서 나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아기가 왜 안 오냐"며 찾았던 것.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동생 장기태(박정민 분)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 들어온 아버지 장민호(임하룡)를 어머니 고여사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치매'임을 짐작한다. 결국 다음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은 결과는 예상대로 치매 초기증상. "증상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치는 어렵다"는 의사의 설명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다.
앞서 장희태는 자신의 이웃사촌이자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가 아내의 불륜 사진을 익명으로 보내며 자신을 조롱하며 협박했던 것을 알고 경찰에 처벌을 요구해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이렇게 비참하고 불행한 캐릭터가 어디 또 있었던가. 남동생이 무직자이고, 아버지가 과거 몇 번이고 외도를 시도했던 사실 등은 이제 별다른 문제가 아닌듯 싶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엄태웅이 연기하는 극중 장희태라는 캐릭터는 쾌활하고 다정다감한 '고등어 박사'였다. 하지만 겹겹이 쌓이는 불행함에 분노하고, 체념하고, 자책하는 일들만 늘어가고 있는 중. 이제는 그가 그저 덤덤하게 읊조리는 내레이션만 들어도 슬플 정도다.
'일리있는사랑'이 1%안팎의 시청률, 불륜을 미화한다는 일부 부정적인 비판 속에서도 꿋꿋하게 호평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엄태웅의 공감을 자아내고, 진정성 잔뜩 묻어나는 연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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