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 유지태, 왜 영웅을 택하지 않았나[Oh!쎈 초점]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01.19 08: 59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는 일종의 히어로물이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힐러라는 코드명을 사용하는 밤 심부름꾼 서정후(지창욱 분)가 한 여자(채영신, 박민영 분)와 사랑에 빠지고 난 후 겪는 변화를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기도 하다. 그에 따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신출귀몰하는 힐러의 액션과 그런 그와 사랑에 빠진 채영신의 러브스토리. 힐러의 정체를 지켜주기 위해 눈을 가린 채 그와 키스를 나누는 채영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채영신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는 서정후의 모습은 히어로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맨스 공식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흔한 히어로물, 혹 로맨틱 코미디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스타 기자 김문호 역을 맡은 유지태 덕분이다. 유지태는 자칫 멜로에만 치중될 수 있는 '힐러'에서 중심을 잡으며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로 활약하고 있다.
유지태가 맡은 김문호라는 캐릭터는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일단 러브라인을 비껴나가 있다. 조카뻘인 채영신을 찾아내 지켜주고 진짜 기자로 성장하게 만드는 키다리 아저씨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 속에 로맨틱한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초반에는 채영신이 김문호에 대한 동경 섞인 존경을 표하는 등 ‘썸’의 기류가 생성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김문호는 러브라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캐릭터다.

러브라인을 빼놓고 할 얘기가 있을까 싶은 게 보통의 지상파 드라마지만 유지태는 김문호 캐릭터를 통해 러브라인 없이도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지태의 김문호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가 ‘고뇌하는 선’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문호는 몇 번의 특종을 성공시킨 잘 나가는 방송 기자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사건들에 대해 용기 있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김문호가 이러한 성향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겪은 사건의 영향이 컸다.
극 중 김문호의 형 김문식은 국내 최대 언론사 제일신문의 사주다. 대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해적방송을 만들어 전파하며 학생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함께 했던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과 최명희(도지원 분)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으로 치명적인 배신을 저지른 인물. 그의 동생으로 어린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김문호는 형의 배반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점차 수위가 높아져 가는 형의 악행으로부터 새로운 세대인 서정후-채영신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한다.
이처럼 서정후-채영신을 지켜내면서도 김문호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이다. 지난 13일 방송에서 김문호는 서정후로부터 “당신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 때 그 때 참말 거짓말을 비벼가며 잘 내뱉는다”는 말을 듣고 고뇌에 빠졌다. 김문식으로부터 서정후-채영신을 지키고자 했지만, 결국 김문식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이후 형을 만난 그는 “형, 이제까지 나 그래도 내가 형보다 나은 인간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형 밖에 없었네. 내가 지금 딱 형 같은 인간이 돼 있잖아”라고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는 한편 “그래서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더러우면 일단 걸레로 닦아야지. 하얀 수건은 아깝잖아”라고 말하며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처럼 어른 세대와 자녀 세대의 중간에서 고뇌하는 인물이라는 독특한 위치가 김문호 캐릭터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 면에서 유지태는 영웅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힐러’를 택한 셈이다.
‘힐러’는 유지태가 약 6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다. 영웅이 아닌 영웅의 옆에서 그를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을 택한 명품 배우의 선택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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