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배우 겸 예능인 이광수가 소속사 킹콩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했다. 연예인이 계약 만료 후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든, 아니면 현 소속사와 계약 조건을 손질해 더 머물든 둘 중 하나일 텐데, 재계약 여부가 언제부턴가 인터넷에서 비중 있는 근황 소식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광수의 이번 재계약은 연예계에서 조금 색다른 뉴스 밸류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재계약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진심과 의리가 남들과 조금은 달랐기 때문이다. 이광수가 킹콩과 인연을 맺은 건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지난 2010년 무렵이다.
우스꽝스런 캐릭터로 인지도를 쌓은 모델 출신 이광수는 킹콩을 통해 정극 연기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자로 겸업하게 됐다. 드라마 ‘동이’ ‘착한 남자’ ‘불의 여신 정이’ ‘시크릿 러브’를 거쳐 최근작 ‘괜찮아 사랑이야’에선 핸디캡 연기까지 소화해내며 많은 갈채를 받았다.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꽤 괜찮은 스펙트럼과 족적을 보이고 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을 시작으로 ‘원더풀 라디오’ ‘간기남’ ‘내 아내의 모든 것’ ‘마이 리틀 히어로’ ‘좋은 친구들’ ‘덕수리 오형제’ 등에서 겹치지 않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한 계단 한 계단씩 배우로 확장중이다. 특히 흥행은 실패했지만 ‘좋은 친구들’에서 보여준 극단의 캐릭터 민수 역할은 이광수를 눈여겨볼 배우로 각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이광수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평양성’의 지방 촬영장에서였다. 190cm 장신인 그가 갑옷을 입고 촬영장 한쪽에서 키 보다 훨씬 긴 창을 이리저리 돌리며 진땀을 흘리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진영 류승룡에게 질문이 몰리자 안 되겠는지 마지막에 덥석 마이크를 잡고 “신인 배우 이광수라고 합니다.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 이렇게 출연하게 돼 가문의 영광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런 이광수가 광고도 찍고 동남아에서 한류 스타로 부각되자 그를 영입하려고 접촉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송중기 회사로 가게 될 거다, 조인성이 속한 고현정 회사로 옮긴다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킹콩 직원들도 이런 소문을 접했지만 이광수 본인에게 사실 여부를 묻지 못하며 한 동안 애를 태워야 했다. 계약이 끝난 뒤 다른 곳으로 가겠다면 말릴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광수와 킹콩의 계약 만료일은 올해 2월. 하지만 계약 종료 3개월 전 서로 재계약 여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관행을 따져보면, 작년 11월쯤 양측의 탐색전이 벌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신경전이 벌어지기 전인 작년 10월, 양측은 사실상 재계약에 합의했다. 10월 어느 날 술을 마신 이광수가 소속사 대표 자택이 있는 경기도 수지에 불쑥 찾아가 흉금을 털어놓으며 ‘새벽 토크’를 벌였는데 이게 둘을 단단하게 묶어줬다.
이날 이광수는 자신에게 연락이 온 회사와 지인, 조건들을 모두 공개하며 ‘솔직히 며칠 동안 마음이 흔들렸고 착잡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그런 소문을 접한 대표님과 매니저 형들은 얼마나 속이 상했겠느냐’라며 ‘저를 이만큼 키워준 킹콩을 도저히 등질 수 없더라’고 말해 체대 출신 이진성 대표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보은과 의리 보다 약삭빠른 처세와 실리 추구가 더 각광받고 대접받는 세상에서 이광수가 우직하지만 더 길게 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광수의 재계약 조건은 이전보다 개선됐을 것이고, 회사는 이것저것 양보하며 결과적으로 개악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동욱 김범 유연석에 이어 이광수까지 다시 품게된 킹콩은 연기자라는 자산의 점유권 뿐 아니라 회사 브랜드를 한층 올렸다는 점에서 재계약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고속도로를 타려면 톨게이트를 지나야 하고 출구에서 반드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연예인들은 회사라는 고속도로에 올라 보다 빠르고 쾌적하게 목적지에 왔으면서도 톨비를 내지 않으려고 별의 별 꼼수를 부릴 때가 종종 있다. 내 운전 솜씨가 뛰어나서, 또는 내 차량 연비가 좋아서라고 이유를 대지만, 회사의 인프라와 용역 제공을 통해 분명 이득을 본 것인데도 비용 지불을 꺼려 상처를 준다. 이광수의 톨게이트 비용 지불이 연예계의 귀감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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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