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것도 ‘클래스’가 달랐다. 몸싸움도 이 정도면 장인 수준이다. ‘압구정 백야’ 여주인공 박하나가 독기를 품고 맹수 같이 달려드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소름 돋게 했다.
지난 14일 방송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는 백야(박하나 분)가 서은하(이보희 분)에게 자신이 친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백야는 은하의 파렴치한 부탁에 싸늘한 표정으로 매몰차게 거절했다. 은하는 백야와 말씨름을 하던 중 분노에 못 이겨 머리와 어깨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때리는 사람이 진이 빠질 정도로 과격한 폭행이 끝난 후 백야는 자신이 친딸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며 은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을 즐겨하는 임성한 작가답게 폭행은 수차례 반복됐고, 예상대로 지나치게 길게 방송됐다. 폭행이 끝난 후 상황은 처참했다. 백야는 너무도 맞은 탓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눈빛에는 독기와 눈물이 반반씩 차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고 은하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주도권은 때린 은하가 아닌 맞은 백야에게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수였다. 이 장면은 임성한 작가가 그동안 숱하게 내보냈던 폭행 장면 중 ‘인어아가씨’의 장서희가 표현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피고름 쓴 대본’ 싸움을 보는 듯 했다.
악에 받쳐 누구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이 목청을 높였던 ‘아리영’ 장서희는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안방극장에 강렬함이 남아있다. 워낙 싸움 하나 하는 장면도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살벌하게 표현하는 임성한 작가가 아니던가.
이번 ‘압구정 백야’의 싸움 장면도 그랬다. 독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백야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었다. 신인 배우인 박하나는 대선배 이보희의 독하디 독한 연기에도 기죽지 않고 매서운 면모를 드러냈다. 임성한 작가의 의도대로 컴퓨터 그래픽 없이도 눈에서 마치 ‘레이저’가 나오는 듯한 살벌한 표정 연기를 했으니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연기는 다했다.
박하나는 이 드라마에서 그 어떤 연기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발성과 표현력으로 제 2의 장서희로 자리매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초반 되바라진 캐릭터로 ‘욕받이’로 불릴만큼 시청자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로 먹었지만 그만큼 캐릭터 소화에 있어서는 무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
압구정 백야’가 그동안의 임성한 드라마와 달리 시끄러운 논란이 적어서 화제성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박하나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무명을 딛고 ‘연기 좀 잘하는’ 배우로 인식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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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백야'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