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영화 '허삼관'은 묘한 영화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세련된 맛이 있다. 부성애를 소재로 하지만, 웃긴 대목이 더 많다. 주연 겸 연출 하정우의 색깔 덕분이다. 전반부는 원작인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충실히 따라가지만, 후반부는 새로운 설정으로 긴장감을 불러 넣는다.
하정우의 첫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가 그의 입맛대로 만든 "이기적인 작품"이었다면, '허삼관'은 그보다 더 대중과의 소통에 중심을 둔 작품이다. 원작과의 비교부터 특별출연한 윤은혜에 대한 '슬픈' 후일담까지, 하정우는 '허삼관'에 얽힌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 두 번째 연출작이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불쌍했나 보다. 생각보다 후하게 보신 분들이 있다. 요며칠 기분이 조금 좋았다. (지난 9일) 언론시사 끝나고 낮술을 먹었다. 큰 산은 넘었다는 마음으로 스태프들과 중국집에서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술을 마셨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작에선 매혈을 한 후 돼지간 볶음과 황주를 먹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허삼관' 제작이 알려지자 많은 팬들이 하정우의 '먹방'을 기대했다. 생각보다 자제했더라.
"내가 먹는 것 보다는 극중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고구마나 순대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해당 장면에 힘을 주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원작에는 가족애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홍소육이 등장하는데, 만두로 바뀌었다.
"만두는 보편적이면서 남녀노소 좋아하는 흔하고 간단한 음식이지 않나. 편집감독님이 편집을 하면서 만두와 순대를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 관객 분들이 이 영화 보고 난 후 만두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촬영장 슬레이트에 이미지를 하나 박았는데 그게 만두였다."
=배경이 1960년대 충남 공주인데, 허삼관은 사투리를 전혀 구사하지 않는다.
"원작을 봤을 때 허삼관이란 캐릭터가 우리나라로 따지면 충청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느릿느릿하고 천하태평한데 할 말은 다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충청도 사람의 이미지였다. 대사가 문어체인데, 여기에 사투리까지 합쳐지면 무리가 있었다. 시대적으로 허삼관이 사는 마을엔 이주민이 많다고 생각했다. 정만식과 조진웅, 이경영 정도만 뉘앙스를 살리고, 나머지는 편하게 대사를 해달라고 했다.
=일부 대사는 책과 그대로다. 영화임에도 문어체 대사를 그대로 살린 이유가 있나.
"문어체 대사에 매료됐다. 그게 위화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했다."
=배경음악도 시대적인 배경과 달리 세련된 느낌이 있다.
"약간 동화 같은 이야기이지 않나. 미술이나 음악도 그렇게 맞췄다. 사실적으로 사투리를 살리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음악적인 콘셉트는 '몬스터 주식회사'나 '토이스토리' 시리즈 등 애니메이션 음악을 참고했다. 후반부는 '원스 어폰 어 아메리카'나 '대부' 등에서 찾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곡가와 이야기를 해서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담고자 했다. 프랑스, 체코, 이태리 등에서 음악이 녹음이 됐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참고한 이유가 있나.
"영화적인 판타지를 강조하고 싶었다. 매혈기라는 것 자체가 가슴 아픈 행위다. '허삼관'은 따뜻한 가족 영화가 되길 바랐다. 미술이나 음악에서 그런 부분을 부각시키고자 해 미술은 원색적인 것을 택했고, 음악은 설명적이고 직접적인 애니메이션 음악을 택했다.
=아역배우들이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일락 역의 남다름, 이락 역의 노강민, 삼락 역의 전현석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아이 선발 과정이 가장 중요했고, 심혈을 기울였다. 촬영하기 5개월 전부터 1,600명의 아이들을 오디션했다. 1주일에 200명씩 봤다. 오디션프로그램처럼 조금씩 좁혀 나갔다. 한 명당 10명의 후보군을 두고 매주 금요일 리딩을 했다. 월화수목은 따로 아역 출신 연기 선생님을 붙여서 발전 가능성을 봤다. 최종적으로 3~5명을 줄인 후에 테스트 촬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연기에 대한 디렉션을 끝내놨다. 아역배우가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 엄마, 연기 선생님과 감독의 디렉션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기 선생님으로 창구를 일원화했다. 연기 선생님이 훈육까지 하게끔 했다. 현장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게끔, 고성이나 욕설이 오가지 않게 했고, 놀이방 같은 공간을 마련했다."
=선발 과정에서 주된 기준은 무엇이었나.
"유연성. 디렉션을 내렸을 때 소화할 수 있느냐였다. 또 나와 하지원의 어릴 적 사진을 놓고 이미지적으로 비슷한 아이들을 찾으려고도 했다. 일락이와 이락이가 전작인 '군도'에 나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원작을 충실히 따른 전반부와 새로운 이야기인 후반부, 두 가지의 톤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을 듯 하다.
"굿판 장면까지 원작에 있는 이야기다. 후반부는 새롭게 창조했다. 고민이 컸다. 다양한 버전이 있었다. 어떤 버전에선 굿판을 엔딩신으로 삼기도 했다. 일락이가 걸린 병명을 두고도 다양하게 고민했다. 폐병 버전도 있었다. 뇌염이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하더라. 돈만 있으면 치료가 가능한 병이기도 했고."
=중국 소설을 영화화한 이유가 있나.
"원작소설을 봤을 때 배우로서 허삼관 캐릭터에 흥미를 느꼈다. 연출 제의까지 수락했던 것도 재미와 관심 때문이었다. 허삼관은 겉과 속이 다르다. 무뚝뚝하지만 속으론 울고 있다. 그런 양면성이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기적으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다른 캐릭터들도 독특하면서 재미있었다."
=허삼관은 첫째 아들 일락이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알고 아내 허옥란(하지원)에게 지난 과거를 묻는다. 본인은 여자의 과거에 관대한가.
"(웃음) 그런 경험이 다 있지 않나. 상대방의 과거를 괜히 추궁하고 궁금해 한다.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보고 괜히 기분 나빠하는 경험, 어렸을 때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허삼관'을 초심을 환기시켜 준 터닝포인트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배우로서 게을러졌던 부분도 있고, 흥미를 잃었던 부분도 있다. 타성에 젖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때쯤 '롤러코스터'를 결심했다. 거의 매일 영화를 찍고 있는데, 감독으로 참여해보니 또 다르더라.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쳤던 소품팀 막내 등 스태프 한명 한명이 보이더라. '허삼관'은 본격적인 상업영화로 평가 받는 작품이지 않나. 대학시절 영화를 하던 마음, 촬영장을 갈 때의 긴장감 등이 느껴졌다. '이런 게 초심이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허삼관'은 영화, 그리고 함께 하는 동료들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차기작 계획은.
"'암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허삼관' 끝나고 하루 쉬고 중국 상해로 가 '암살'을 촬영했다. '허삼관'을 끝낸 후인지라 최동훈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암살' 이후 들어갈 '아가씨'란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박찬욱 감독님과 해보고 싶었다. 배우로서 영화를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인으로 이 선배 감독님들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까 하는 궁금증이 추가됐다. 당분간은 배우로서 작업을 이어나갈 것 같다. 할리우드 이야기도 있었지만, 별 다른 진전은 없다. 제의가 있었지만,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암살'과 '아가씨'가 더 느낌있다."
jay@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