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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허삼관'이 기대와 달리 개봉 초반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믿고 보는 대세 배우 하정우가 메가폰을 잡았고, 하지원과 함께 주연으로 참여해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지만 '오늘의 연애' '국제시장'에 큰 폭으로 뒤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10~20대를 사로잡으며 흥행세에 올라 탄 '오늘의 연애'에 이어 개봉 한 달이 지난 '국제시장'에까지 발목이 잡힌 건 첫 주말을 앞둔 '허삼관' 입장에선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사인이다. 벌써부터 이 스코어와 분위기라면 150만 동원도 자신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총 제작비 100억 원이 소요된 '허삼관'은 극장 수입으로만 최소 300만 명을 동원해야 밑지지 않는다.

'허삼관'은 언론 배급 시사 후 다소 평이 엇갈리긴 했지만 호평이 많았고, '국제시장'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부진한 예매율과 냉정한 온라인 평점과 후기가 잇달아 공개되면서 반갑지 않은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허삼관'의 이 같은 더딘 '버퍼링' 이유 중 가장 먼저 꼽히는 건 '국제시장'과 겹친 부성애 코드다. 피보다 진한 부정을 그린 '허삼관'의 셀링 포인트를 비슷한 시기 '국제시장'에 선점 당한 게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허삼관'에 투자한 한 창투사 대표는 "국제시장의 흥행세가 진정되길 바랐는데 이건 뭐 열기가 더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한 마디로 운이 없다"며 씁쓸해 했다.
하정우의 다소 낯선 방식의 연출도 영화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지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향한 감정 이입을 차단하는 것 같은 연출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특히 장남 일락이 하소용의 자식이란 걸 알게 된 삼관이 아내 옥란과 일락을 냉대하는 장면에서 이런 연출 기법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와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 등이 이런 '낯설게 하기' 연출을 구사한 것으로 유명한데 관객의 지나친 감정 이입을 일부러 차단함으로써 보다 극적 효과를 높이려는 장치로 사용됐다. 블랙코미디 정서가 깔린 '허삼관'도 이런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 연극적 요소를 가미했는데, 영화의 1차 눈물 지점인 일락의 친부 회복 기원 굿판 신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 위해 이런 연출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경을 헤매며 피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한 삼관이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 일락과 재회하는 장면도 줌인과 클로우즈 업 없이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졌다. 절제미가 돋보인 장면이란 평도 있지만,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감동적인 신이었음에도 지나치게 밋밋하게 그려져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 배우의 감독 도전을 곱게만 보지 않으려는 시선도 감지된다. 하정우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갈채받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개중엔 이런 멀티 플레이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시기, 질투가 '허삼관' 구매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영화사 대표는 "하정우가 연기 전공임에도 연출을 잘 해내 대견하지만 일부에선 이런 만능인에 대한 정서적 거부 반응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제 개봉한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 만큼 '허삼관'이 첫 주말 부진을 털고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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