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부, 그리고 꿈을 찾아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뭐라 할 수 없는, 어쩌면 장려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빠져 나간 선수들의 공백이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스타들의 해외행에 한국프로야구가 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3년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였던 강정호(28)는 17일(한국시간) 미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와 ‘4+1년’ 총액 165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 4년간 기본 1100만 달러를 받고 5년차인 2019년 피츠버그가 팀 옵션을 실행할 경우 550만 달러를 받는 조건이다. 이로써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MLB로 진출한 첫 야수 타이틀은 강정호의 몫이 됐다.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그간 MLB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아마추어 시절 MLB로 건너 간 사례다. 이런 고정된 경로를 류현진(28)이 2012년 말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깼다. 지난해에는 윤석민(29, 볼티모어)이 류현진의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야수 쪽에서도 성역이 깨졌다. 한국프로야구가 3년 연속 미국 진출 선수를 배출한 것이다.

리그의 역량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실제 MLB 팀들의 극동아시아 스카우트 담당들은 “한국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업무도, 인원도 더 많아진 편이다. 관심이 없던 팀들이 신규 인력을 채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라고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그간 아시아권 시장은 일본의 검증된 선수, 그리고 한국과 대만의 젊은 선수들에게 쏠려 있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유출된다는 다른 의미도 있다.
실제 스타들의 해외진출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3~4년간의 흐름을 살펴보면 나간 선수들의 무게감이 적지 않다. 국내 최고의 타자였던 이대호는 2012년 오릭스 유니폼을 입으며 일본으로 건너갔다. 2013년에는 류현진이, 2014년에는 윤석민과 오승환(한신)이, 그리고 2015년에는 강정호가 새 무대에서 도전을 시작했거나 시작한다. 한창 전성기에 있을 때 해외진출의 꿈을 이룬 5명은 공히 소속팀과 야구 대표팀의 핵심이었다.
이에 비해 이들의 공백을 메울 만한 새 스타의 출현은 더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마운드의 경우 류현진 윤석민 오승환이 줬던 무게감을 재현하는 국내파 투수들이 극히 부족하다. 외국인 투수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리그는 어떻게든 굴러가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프로스포츠는 스타가 먹여 살린다. 스타 없는 프로스포츠는 점차 관심도가 떨어진다. 지금은 최고의 인기스포츠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반대로 외부의 위협은 커진다. MLB의 공습이 대표적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여전히 프로야구가 케이블 채널의 킬러 콘텐츠지만 MLB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시간대를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귀띔했다. 한 포털사이트 관계자 또한 “지난해 MLB 포스트시즌의 동시접속자수는 전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직장인들이 아침에 컴퓨터로 많은 시청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사량과 조회수도 류현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났다”고 증언했다.
이에 프로축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프로축구는 얼마 가지 않아 후퇴했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해외로 진출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었다. 팬들은 스타들의 모습을 밤새 ‘TV’로 시청했고 이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 유럽축구리그들은 프로축구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프로축구와 해외축구가 ‘축구’로 묶일 것이라는 관념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프로야구와 MLB도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명예, 그리고 더 많은 연봉이 보장된 해외무대 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 당장 잠시 꿈을 미룬 김광현(SK) 양현종(KIA)은 앞으로 다시 도전할 뜻을 시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도 문제다. 류현진이 박찬호를 보며 해외진출을 꿈꿨듯이, 류현진을 보며 해외진출을 꿈꾸는 유망주들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해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프로야구에도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명확한 비전, 인프라 확대, 투자 확대, 구단 운영 선진화 등의 ‘과제’가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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