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은 이보다 더한 부상 악령을 경험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브리즈번을 떠나 8강 결전지인 멜버른에 입성했다. 대표팀은 지난 17일 브리즈번 스타디움서 열린 개최국 호주와 2015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종전서 이정협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3연승(승점 9), A조 1위로 8강에 진출한 한국은 오는 22일 멜버른서 B조 2위 우즈베키스탄과 4강 티켓을 놓고 맞붙게 됐다.
과정은 힘겨웠다. 오만을 1-0으로 잡았지만 '에이스' 이청용(볼튼)을 다리 부상으로 잃었다. 김창수(가시와 레이솔)도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김주영(서울)은 오른 발등을 다쳤다. 설상가상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 핵심 전력들이 감기 몸살을 앓았다.

쿠웨이트전은 강제 플랜B를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1-0으로 승리하며 조기 8강행을 확정지었다. 호주와의 3차전은 조 1위 싸움이 걸린 중대 일전이었다. 슈틸리케호는 4만여 명 홈팀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은 호주를 1-0으로 제압했다. 조 1위 8강행의 1차 목표를 달성했다. 부상의 연속이었다. 구자철이 오른팔 인대 손상으로 대회를 조기 마감했다. 박주호(마인츠)와 김진현도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18일 회복훈련 전 취재진과 만나 그럴 만한 스토리를 공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02년 독일 18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유럽선수권 결승에 올라 줄부상에 발목이 잡혀 스페인에 0-1로 패해 준우승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18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유럽선수권대회를 나갔는데 결승까지 올라갔다. 부상으로 인한 선수 교체가 불가능한 대회여서 벤치에 2명 밖에 앉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의 슈틸리케 감독에겐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경험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둥들의 잇딴 이탈에도 자신감을 보인다.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뛸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 박주호 구자철을 비롯해 부상으로 대회를 마감한 이청용 등은 모두 중요한 선수들"이라며 "이들이 크고 작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못 뛸 때 다른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의미가 있고 중요한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전서 쉬거나 많이 뛰지 않아 이날 훈련장에 나온 선수들에게 '여기 있는 선수들은 모두 중요하고 언제 어떻게 경기에 나갈지 모른다.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면서 "오만전과 쿠웨이트전에 골을 넣은 조영철과 남태희도 이곳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언제 어떻게 누가 경기에 나갈지 모른다. 모든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존중을 받고 경기를 뛰고 있다. 지금까지 23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경기에 나섰다. 선수들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연이은 부상 악령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이유다.
doly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