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는 같았다. 더 꾸준한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되는 명실상부한 ‘에이스’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꾸준함의 상징은 역시 ‘소화이닝’다. 대부분 이닝소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가운데 토종 에이스들이 출발점에서 힘차게 발걸음을 뗐다.
최근 몇 년간 선발 마운드는 외국인 투수들이 지배했다. 특히 2012년 이후로는 그런 흐름이 도드라졌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그랬다. 2012년 평균자책점 1위는 브랜든 나이트(넥센, 2.20)였다. 2013년은 찰리(NC, 2.48), 그리고 지난해에는 릭 밴덴헐크(삼성, 3.18)가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외국인 선수가 3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것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평균자책점 뿐만이 아니었다. 이닝소화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김광현(SK, 193⅔) 류현진(당시 한화, 192⅔이닝) 봉중근(LG, 178⅓이닝)이 1~3위를 휩쓴 이후 국내 선수들은 이닝소화능력에서 외국인 선수들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2011년은 벤자민 주키치(당시 LG, 187⅔이닝), 2012년은 브랜든 나이트(당시 넥센, 208⅔이닝), 2013년은 레다메스 리즈(당시 LG, 202⅔이닝), 2014년은 앤디 밴헤켄(넥센, 187이닝)이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반면 국내 선수들은 이닝소화능력에서 오히려 후퇴했다. 200이닝은커녕 180이닝을 넘긴 선수도 거의 없다. 지난 4년 동안 180이닝을 던진 선수는 2011년의 장원준(당시 롯데, 180⅔이닝), 지금은 메이저리그로 간 2012년 류현진(182⅔이닝), 2013년 노경은(두산, 180⅓이닝)까지 딱 세 명이다. 지난해에는 177⅓이닝의 유희관(두산)이 최다이닝소화였다. “그간 한국야구,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라는 지난해 다승왕 양현종(KIA)의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다.
올해부터 프로야구는 144경기 체제로 개편된다. 너도 나도 마운드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외국인 투수 두 명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결국 국내 선수들이 버텨주지 못한다면 마운드가 와해될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토종 에이스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많은 이닝을 소화해줘야 팀 마운드에 숨통이 트인다”고 지적한다. 전지훈련 전 각 팀의 에이스급 투수들이 대개 “페이스가 떨어지는 일 없이 꾸준하게 던지겠다”라고 다짐한 것도 흥미롭다. 김광현과 같이 이닝소화를 아예 1순위로 뽑은 선수도 있고 장원준은 두산 입단식 당시 170이닝을 공언했다.
이닝을 많이 소화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만큼 건강하게, 그리고 뛰어나게 한 시즌을 보냈다는 것을 뜻한다.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특히 내년은 144경기 체제다. 이런 활약은 오랜 기간 나오지 않은 토종 20승을 향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인 투수보다 더 많은 이닝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지만 토종 최고를 향한 자존심 대결은 치열할 수 있다.
우선 지난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축에 속했던 유희관 김광현 양현종 윤성환(삼성) 장원준 등이 후보자로 손꼽힌다. 이들은 지난해 모두 13번 이상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한 선수들이다. 기본적으로 6이닝 이상을 능히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원숙한 피칭을 할 나이라 기대가 모인다. 연봉이 많아지는 만큼, 팀에 대한 기여도도 높아질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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