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투수조의 최고참 이재우(35)가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자신보다 더 오래 야구를 경험한 노장 투수의 모습이 자신을 일깨웠다.
이재우는 지난 시즌 팀의 5선발로 내정됐지만 송일수 전 감독은 비만 오면 이재우의 순번을 없애는 대신 더스틴 니퍼트를 마운드에 올렸다. 니퍼트는 자주 나와서 힘들었고, 이재우는 던지지 못해 괴로웠다. 송 전 감독은 투수조 최고 베테랑을 방치하다시피 했고, 이재우의 등판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피칭 리듬은 물론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기도 힘들었다. 여름에 구속을 147km까지 끌어올렸기에 더욱 아쉬웠다.
결국 11경기에서 거둔 1승 2패 1홀드, 5.02의 평균자책점이 지난해 이재우가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신임 김태형 감독은 선발이나 셋업맨으로 경쟁할 기회를 주겠다고 공언했고, 투수조 베테랑으로서 투수들을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도 언론을 통해 전달했다. 이재우도 다시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맬 수 있었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 중인 두산의 전지훈련에 임하고 있는 이재우는 전지훈련 출국 직전가지 일본에 있었다. 봉중근, 신재웅(이상 LG)과 함께 일본 돗토리에서 개인훈련을 소화한 것.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우선 시설에 만족했다. 이재우는 “투수들이 활용하는 근육은 일반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하기 힘든데, 거기 있는 기구로는 골반 안쪽이나 견갑골 등 회전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투수들이 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서 5일밖에 머물지 못했는데,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힐링도 많이 하고 왔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더 큰 수확은 일본 투수들의 훈련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었다. “주니치의 요시미 가즈키, 야마모토 마사, 이와세 히토키 등 많은 투수들이 있었다. 그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도 조금씩 봤다. 성실하게 집중해서 하더라”며 이재우는 곁에서 본 대투수들의 모습을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시선을 끈 것은 1965년생임에도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인 노장 좌완 야마모토였다. 야마모토는 1986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데뷔해 통산 219승 165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45를 올렸다. 주니치를 거쳐간 선동렬, 이상훈, 이종범, 이병규와도 한솥밥을 먹었다. 1962년생인 제이미 모이어가 2012년 은퇴한 뒤로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투수라면 경외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재우도 마찬가지였다. “야마모토는 존경스러웠다. 아무래도 달라 보이더라. 나도 저 선수처럼 자기관리 하면서 50살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는 것이 이재우의 설명. “일단 지금 잘 해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웃었지만, 부활을 준비하는 이재우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할 만큼 마음은 비웠다. 한 번의 등판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이재우는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후배들과 경쟁해서 어떤 자리에 있든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로 의지을 드러냈다. 김선우, 정재훈이 차례로 떠난 두산 투수진을 이재우가 마운드 안팎에서 이끌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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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