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여의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우 지창욱이 섬세한 내면연기로 시종일관 몰입감을 극대화시키며 극을 쥐락펴락했다. 노련하게 펼쳐진 지창욱의 절제된 연기는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지난 20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극본 송지나, 연출 이정섭 김진우) 14회에는 사부 기영재(오광록 분)를 잃은 서정후(지창욱 분)의 슬픔이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이는 김문식(박상원 분)을 향한 정후와 문호(유지태 분)의 분노가 절정에 달하는 사건이자, 정후와 채영신(박민영 분)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했다.
앞서 영재는 정후가 김문식의 함정에 빠져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힐러라고 거짓말하며 정후 대신 체포됐다. 이어 영재는 다시 만난 김문식에게 “새끼 곰 두 마리는 건드리지 마라”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겼고, 발끈한 김문식은 영재의 죽음을 사주하며 악행을 이어나갔다.

정후는 충격에 빠졌다. 영재의 시신을 직접 확인한 정후는 “아니지? 저번에도 이렇게 장난쳤던 거 내가 다 기억하거든.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지?”라고 울먹이며 영재를 애타게 불렀다. 특히 정후는 어린 시절 부모처럼 자신을 살뜰히 챙겨줬던 영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슬픔에 잠긴 정후를 위해 조민자(김미경 분)는 경찰 내부망을 해킹, 영재의 진술 녹화 화면을 확보해 정후에게 건넸다. 이 영상에서 기영재는 “후회 되는 게 하나가 있다. 진작 그만둘 걸. 그만두고 좋아하는 여자랑 행복하게 살 걸”이라고 말해 정후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정후에게 힐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여자, 아이, 개 고양이 등과 함께 평범하게 살라는 유언이었다.
하지만 정후는 영신이 자신 옆에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자조하며 종적을 감췄다. 이에 조민자가 나섰다. 영신을 직접 만나 정후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 조민자는 영신에게 정후의 행방을 알려주며 두 사람을 응원했다. 그렇게 영신은 엿새 만에 만난 정후를 정성껏 간호했고, 까칠하게 영신을 밀어냈던 정후도 영신과 애달픈 키스를 나누며 슬픔을 위로받았다.
정치나 사회 정의 같은 건 그저 재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살던 청춘들이 부모세대가 남겨놓은 세상과 맞짱 뜨는 통쾌하고 발칙한 액션 로맨스 드라마 ‘힐러’. 극중 비밀스러운 심부름꾼 힐러로 분해 전작과의 차별화에 성공한 지창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절망감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외롭고 고통 가득한 주인공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지창욱의 성숙해진, 그리고 더 깊어진 내면연기는 드라마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며 남은 이야기에 궁금증을 고조시켰다.
‘힐러’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