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F코드, 미친 세상에 화염병을 투척하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1.21 16: 06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맥박수가 빨라지고 전율이 느껴지는 시청각적 경험은 언제나 짜릿하고 꽤 먹먹한 여운을 선물한다. 두 시간 만에 영화관을 벗어나 다시 루틴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은 낯섦을 만끽하게 해주는 영화는 기특함을 넘어 그 자체가 도파민이다.
 ‘내 심장을 쏴라’(문제용 감독)를 보면서 정확히 세 지점에서 심장이 쫄깃해졌고, 나도 모르게 두 팔에 소름이 번졌다. 룸메이트를 넘어선 정신병원 동지인 승민(이민기)과 수명(여진구)이 모터보트를 쾌속 운전하며 첫 탈출의 성공을 자축하는 모습에서 1차 찌릿한 쾌감이 전해졌고, 승민이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딸을 잃은 현선 엄마(이화영)의 죄책감을 어루만져주는 장면에서 전류가 감지됐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 가는 자의 브로맨스와 탈출기를 그린 ‘내 심장을 쏴라’는 상업 영화, 드라마의 금기 소재나 다름없는 정신병원과 F코드로 불리는 폐쇄 병동 환자를 배경으로 한 ‘강심장’ 영화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굳이 우울하고 불편한 창살 안을 들여다봐야 하나 반문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역설적으로 밝고 유쾌한 톤을 잃지 않는다.

400억 유산 상속 때문에 이복형에게 표적이 돼 멀쩡한데도 정신병원에 끌려온 승민은 환자들 사이에서 라이터로 통한다. 교도소 범털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 요주의 인물 라이터는 방화범을 뜻하는 은어. 상습 폭행을 일삼는 공공의 적 보호사 점박이(박두식)와 유일하게 맞장을 뜨고, 트위스트 한 판으로 병동을 순식간에 광란의 클럽으로 만드는 재주꾼도 승민이다.
4인용 병실 501호 옆 베드의 수명은 이런 승민이 싫지 않지만 걸핏하면 ‘오빠랑 찐하게 데이트나 할까’라며 수작을 부리고, 유일한 삶의 낙인 담배를 한 주먹씩 뺏어갈 땐 살의를 느낄 만큼 미워진다. 하지만 승민이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안나푸르나에 가야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엔 어떻게든 그를 돕기 위해 꾀를 내고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세상과 나로부터 도망치는 정신 분열을 앓고 있는 수명. 그러나 손 내밀어준 승민 덕에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하고 모터보트를 유턴해 뒤 쫓던 놈들과 세상을 향해 난생 처음 고함을 치며, 급기야 목숨을 건 친구의 탈출에까지 앞장서게 된다. 입에 거품을 물고 나무늘보가 되는 바보 주사보다 더 위태로운 전기치료를 자청하게 되는 것도 자신의 또 다른 자아가 된 승민을 위해서다.
스포츠카를 모는 재벌가 자제에서 하루아침에 F코드로 전락한 승민 역의 이민기는 ‘몬스터’ ‘황제를 위하여’의 연속된 부진을 말끔히 털어낼 만큼 뛰어난 몰입과 열연을 보여줬다. 상대의 시선을 붙잡는 몽환적이면서 호소력 강한 특유의 눈빛과 심드렁하지만 연민과 진심이 느껴지는 승민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연기했다.
유사시 무기와 비상벨로 활용되는 승민의 재산목록 1호인 시계는 관객에게 ‘평생 그렇게 머뭇거린 채 망설이고만 살다 죽겠느냐’고 호되게 묻는 회초리로 기능한다. 승민의 시력과 탈출을 이어주는 극적 브릿지이면서 청춘의 메타포이기도 한 이 세라믹 시계는 이 영화의 주제인 청춘들의 무기력해지는 자율 의지와 전투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택배처럼 봉고차에 실려 수리병원에 온 수명을 연기한 여진구도 왜 우리가 이 배우에게 주목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엄마의 자살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 혐오가 덧씌워져 가위 공포증을 앓는 수명과 빼어나게 하나가 됐다. 노안 덕분에(?) 25세 성인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특히 띠동갑인 이민기와의 케미도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자신을 평생 병원에 가둬놓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열하기 전 1~2초간 보여준 표정 연기는 이 영화를 통틀어 잔상이 남는 명장면 중 하나였다. 좋은 배우는 태어나는 것이지, 결코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새삼 일깨워준 놀라운 ‘코 평수 확장’ 신이었다. 또한 후반부 점박이에게 머리채를 잡혀 위기를 맞는 장면에서 자신을 괴롭혀온 트라우마를 멋지게 극복해내는 모습에선 감독과 원작자가 의도한 카타르시스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원칙주의자이지만 누구보다 두 남자를 응원하는 입체적 캐릭터 최 간호사의 유오성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객석을 긴장시키며 중량감 있는 연기가 뭔지 잘 보여줬다. 가장 궁금한 캐스팅 중 하나였던 우울한 청소부 역의 박충선도 마치 소설에서 방금 걸어 나온 것 같은 생동감 있는 연기로 감칠맛을 더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와 한예종 출신 문제용 감독의 데뷔작이다. 15세 관람가.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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