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만 없었더라면'은 다쳐본 선수들이 누구나 하는 후회, 혹은 미련일지 모른다.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이제 꽃을 피워보려고 할 때 나오는 부상, 혹은 아직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만든 부상. 종류가 무엇이든 부상은 운동선수에게는 천적이다. 그러나 어린 내야수 임병욱(20, 넥센 히어로즈)은 부상을 '감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해 덕수고를 졸업하고 1차 1라운드로 넥센에 지명된 임병욱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많은 러브콜을 받은 탈고교급 기대주였다. 입단 직후 시범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장점인 타격능력을 보여줬던 그는 3월 시범경기에서 도루 도중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해 한 시즌을 통째로 마감해야 했다.

막 봉우리가 터지려던 풋풋한 유망주의 부상에 팀도 본인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은 임병욱은 어느 정도 부상이 회복된 뒤 화성 2군 구장에 나와 상체 훈련부터 하며 재활에 매진했고 제대로 몸을 만든 그는 1년 뒤인 올해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다시 승선했다.
지난 21일(한국시간) 통화가 닿은 그는 "다쳤을 땐 다시 야구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걷고 뛰고 하니까 다시 야구가 재미있어졌다.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의무감으로 했던 마음이 있는데, 이번에 다치면서 '내가 야구를 이만큼 좋아하는구나. 다시는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되돌아보면 처음인 지금 미리 이런 시간을 겪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라운드 복귀 소감을 전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그리고 선후배 동료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걸 보는 동안 그는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임병욱은 "지난해 처음 1라운드 지명으로 들어와 뭔가 보여주려고 한 게 강했는데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쉬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선배들에게 이야기도 많이 들으면서 이제 마음이 편해지고 제가 부족한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동기인 김하성은 어느새 팀내 유격수 자리를 놓고 다투는 후보로 올라왔다. 임병욱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의식한다고 해서 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부상 때문만이 아니라 실력에서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기 때문에 하성이가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부족했다. 그래서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아쉽다는 말보다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임병욱이 이만큼 마음을 편히 다잡을 수 있는 데에는 아버지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캠프에 오기 전에 아버지랑 터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1년 동안 쉬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돼서 전화드렸다고 했더니 '잘 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네가 하던 대로만 하면 잘 될 거다. 이런 걱정도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의미니까 네가 앞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고 전했다.
올해 임병욱이 스프링캠프를 넘어 그라운드에서 이뤄가고 싶은 것도 눈앞의 수치가 아닌 성장이다. 그는 "캠프에서 구장과 숙소를 오가는 10분 동안 형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정말 야구만 생각하는 분들이다. 좋은 이야기를 많은 들으면서 제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서)건창이 형, (문)우람이 형 등 선배들의 노력을 잘 보고 계속 배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팀에서는 또래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타격 능력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데뷔 첫 해부터 프로의 화려한 면보다는 아픈 면을 보며 성숙해진 임병욱이라면, 앞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도 다시 성장의 시간이라 여길 수 있을 것이기에 그의 미래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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