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쎄시봉'은 따뜻한 영화다.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감미로운 음악으로 풀어냈다. 시대적 배경과 이를 대표하는 노래들이 선사하는 애틋한 감성과 낭만적인 분위기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후반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다. 쎄시봉의 김 사장(권해효)은 쎄시봉을 주름잡던 대학생 윤형주(강하늘)와 송창식(조복래)을 묶어 듀엣으로 데뷔시키려고 한다. 이장희(진구)는 눈여겨 본 오근태(정우)를 제3의 멤버로 권하고, 그렇게 트리오 쎄시봉이 결성된다. 이장희의 친구이자 배우 지망생 민자영(한효주)이 그들의 뮤즈로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시간들이 펼쳐진다.


영화는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듀엣 트윈폴리오의 탄생 비화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트윈폴리오가 실은 트리오 쎄시봉이었으며, 그 뒤에는 오근태와 민자영의 로맨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영남,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등 실존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주된 이야기는 가상인물 오근태와 민자영이 끌고 간다.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강하늘과 조복래는 각각 미성을 자랑하는 엘리트 윤형주와 묵직한 저음의 야성남 송창식으로 분해 상반된 매력을 드러낸다. 조영남 역으로 특별출연한 김인권 등 실존인물과 상당한 싱크로율은 인상적이다. 2인1역을 맡은 정우와 김윤석, 한효주와 김희애, 진구와 장현성을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인물들의 20대와 40대를 그려낸다.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인물은 한효주다. 화면 속에서 홀로 반짝거리는데, 모든 남성들의 마음들을 사로잡는 뮤즈 역을 맡은 만큼 사랑스럽다. 깜찍한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는가 하면, 먼저 이성에게 다가가는 당돌한 면도 지니고 있다. 마냥 착하지 않아 더욱 매혹적이다. 주로 강한 역할을 맡았던 김윤석은 평범한 중년 남성으로 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새 얼굴' 조복래는 '쎄시봉'의 발견이다.
듣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웨딩 케이크'와 '나 그대에서 모두 드리리' 등을 비롯해 '사랑이야' '조개 껍질 묶어' 등 명곡들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작곡엔 재능이 없던 오근태는 민자영의 마음을 얻고자 이장희의 자작곡을 자신의 곡이라며 부른다. 늦은 밤 수화기 너머 민자영을 위해 '그건 너'를 열창하는 장면은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낭만은 '쎄시봉'의 가장 큰 매력이다. 통금시간에 쫓겨 데이트를 끝내야 하고,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가며 사랑을 속삭이던 시절이다. 주인공들은 첫사랑이기에 서툴고 부족하며,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그 순수함이 세월과 상처로 변질된 이후의 모습까지, 영화 '건축학 개론'(2012)이 연상되지만 실존인물들과 그들의 음악이 더해져 '쎄시봉'만의 힘을 보여준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오는 2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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