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포츠팬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자 목소리인 이동근(34) 캐스터. 그는 지난 2011년 SBS스포츠에 입사해 어느덧 야구중계를 3년이나 해냈고, 두 번째 배구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 캐스터는 “해가 갈수록 무한한 책임감이 생긴다. 경기장 밖에서도 회사를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예의 있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경험이 더해질수록 무거워지는 어깨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프리랜서 시절 퓨처스리그 중계를 시작으로 프로야구를 경험했으니 야구 경력은 꽤나 쌓였다. 책임감의 크기 또한 그만큼 커졌다.
확연히 다른 두 종목을 맡고 있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 캐스터는 “깔끔한 중계, 사족 없는 방송을 원한다. 배구는 그런 부분에 맞는 종목이다. 득점이 되면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매 득점마다 샤우팅을 넣어줘야 해서 청량감도 있다. 반면 야구는 빈 공간이 많아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 많다는 차이가 있다. 배구는 상황을 따라가고, 야구는 만들면서 가야 하는 것 같다”고 첨언했다.

알아보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 같다는 말엔 손사래를 쳤다. 이 캐스터는 “우리끼리는 ‘반쪽짜리 인생’이라는 말도 많이 한다. 경기장 주변에 있거나 옆에 해설위원 혹은 여자 아나운서가 같이 있어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남자 아나운서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팬이 정우영 선배로 잘못 알아봐서 아니라고 했는데도 계속 사인을 해달라고 해 ‘정우영’이라고 사인을 해준 적도 있었다“라며 웃었다.
좋은 중계방송의 첫 번째 조건으로는 해설위원과의 호흡을 꼽았다. 해설위원과 친밀감을 쌓아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서먹했던 사람과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설명했지만, 중계부스 밖을 벗어난 삶에서는 좋은 인연을 찾고 싶은 평범한 남성 직장인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는 말에는 바쁜 회사원의 아쉬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꿈꾸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바쁜 일상조차 행복이 되기도 한다. 그는 “주변에선 혹사라고 하는데, 일주일에 중계를 2~3번만 한다면 지금보다 좋을지를 가정해봤다.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몸이 힘들어도 관리를 잘 하면서 일을 많이 하는 게 더 행복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내민 태블릿 PC 속 일정표에는 중계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바쁜 생활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중계가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서 밝혔던 책임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입사 후 처음 야구 중계에 들어갈 때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내 실력이라기보다는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당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더빙 캐스터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공채로 풀타임 중계 캐스터까지 됐다. 현재 각 방송사에 더빙 캐스터들이 많이 배출됐는데, 잘 되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이어 “스튜디오에 있어서 편하게 방송할 것 같지만, 고통이 많을 것이다. 밤 12시에 끝나는 일을 주 6일 동안 하면서도 정규직이 되기 힘들다”는 말로 후배들의 고충을 대변하더니, “내가 좋은 방송을 하고 선례를 남겨 방송국에서 더빙 캐스터 출신들을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까지 내비쳤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면에 있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선배의 마음이었다.
후배 이야기가 나오자 롤 모델이기도 한 선배의 이름도 꺼냈다. 같은 곳에 몸담고 있는 임한섭 캐스터다. 이 캐스터는 “워낙 바빠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속 고민한다. 게으른 사람이 스포츠 업계에 종사하면서 계획적으로 살게 됐다. 우린 서로 챙겨주지 않으면 섬처럼 고립된다. 그런 점에서 임한섭 선배를 정말 존경한다. 저 선배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방송뿐만 아니라 인생을 닮고 싶다”고 주저 없이 임 캐스터에게 감사를 표했다.
존경하는 선배는 캐스터로서의 방향에까지 영향을 줬다. 이 캐스터는 “내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려고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이미지를 추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방송을 잘 하는 것보다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엔 대본이 없어 생각을 바로 말로 옮겨야 한다. 그러면 본성이 자주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좋은 스포츠 중계를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라는 의견을 드러내보였다.
자신과 같은 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도전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불확실하고 어려운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니 “이들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꼬집었다.

그리고 “앞서도 얘기했듯 좋은 사람이 좋은 방송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송에 대한 생각 이전에 좋은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스포츠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를 공개하기도 했다. 좋은 방송인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길 꿈꾸는 남자. 인간 이동근은 스포츠 아나운서 이동근보다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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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포츠, 김연준, 김숙임 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