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순은 1회에만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 감독들이 종종 하곤 하는 말이다. 1회만 지나면 어느 타순에서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것. 5번에서 공격이 시작되어 좋은 기회가 8, 9번으로 가는 때도 있고, 8, 9번이 테이블 세터가 되면서 무사에 주자 2명을 놓고 1번타자가 공격에 들어가는 이상적인 이닝도 발생 가능하다.
야구의 역사와 기록을 연구하는 모임인 SABR(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의 멤버인 스캇 린드홈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진 모든 경기의 데이터를 종합해 통계를 냈다. 그의 연구 결과는 타순에 따른 각 이닝별 공격 순서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통해 각 팀이 타순을 구성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1번에 배치된 타자는 자신이 들어간 타석 중 40.7% 만큼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섰다. 1회 공격 때는 무조건 선두타자기 때문에 공격을 시작하는 타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2번타자는 두 번째로 나오는 비율이 41.7%였고, 3번타자는 이닝의 3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42.6%로 나타났다.
반면 4번부터는 점점 자기 타순과 이닝 내 타격 순서가 일치할 확률이 떨어진다. 4번타자가 공격 이닝의 4번째 타자로 들어서는 것은 27.8%다. 예컨대 1회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나거나 작전 실패 등으로 4번까지 오지 못했을 경우 4번타자는 1회 4번째 타자가 아닌 2회 선두타자로 등장한다. 4번타자가 이닝의 선두타자로 나오는 것은 24.6%로, 1번타자 다음으로 높은 확률이다. 그만큼 야구에서 삼자범퇴가 흔하다는 의미도 된다.
이닝의 4번째 타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나오기 이전에 팀이 득점을 했거나 베이스 위에 주자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찬스인 상황이 많다. 이닝의 4번째 타자로 나온 비율은 역시 4번타자가 가장 높은데, 주목할 부분은 7번타자가 16.7%로 그 다음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1회에 삼자범퇴를 당한 뒤 2회에 4~6번타자 중 하나가 출루하면 7번타자는 2회 공격의 4번째 타자(혹은 3회 선두타자)가 되는 식이다.
4번타자가 이닝을 시작하는 일이 잦다는 것은 5번타자가 2번째(25.2%), 6번타자가 3번째(25.8%)로 나오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통계는 4~6번이라고 해서 장타력이나 주자를 불러들이는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각 팀이 어느 타순에나 쓸 수 있는 선수 혹은 ‘5툴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서 살펴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3회에 첫 타석을 맞을 수도 있는 7~9번 타자들은 이닝별 1~3번째 타석 중 크게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있다. 7번타자가 2번째 타자로 공격할 확률(21.6%)이 제일 낮고 3번째 타자일 비율(24.1%)가 가장 높은데, 편차가 2.5%에 불과하다. 8번타자와 9번타자가 이닝의 1~3번째 타자가 되는 각각의 비율은 모두 이 범위 안에 있다.
물론 이 자료만 믿고 타순을 구성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독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선수의 구성을 고려해 이 통계를 참고한다면 상황에 맞게 타순을 일부 조정하는 데는 도움을 받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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