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속 자막 전쟁, 재치와 망발 사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1.24 07: 22

[OSEN=최나영의 연예토피아] 갈수록 도발적이고, 과감해진다. TV 속 자막 얘기다.
지난 17일 방송된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최근 배우 이병헌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자막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가상부부 홍진영과 남궁민의 데이트 장면에 '로맨틱', '성공적'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온 것.
이날 방송에서 남궁민과 홍진영은 마카오 데이트를 즐겼고, 홍진영은 남궁민을 위해 노래를 녹음해 이벤트를 펼쳤다. 이에 자막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300일, 성공적? 로맨틱?"이라는 글이 깔렸다. '저격'이라고도 볼 수 있는 패러디다.

이에 네티즌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반응과 농담으로 풀기에는 의도성이 짙다라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자막을 일종의 개구진 행동이라 본다면 보다 강하게 비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해 9월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한 차례 자막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방송에서는 바닷가로 놀라간 타블로와 딸 하루의 모습이 전파를 탔는데, 타블로가 혼자 뛰어가는 장면에서 제작진이 '아빠 어디가, 뒷일이 무서워 냅다 도망', '만날 질 거 왜 덤벼서' 등의 자막을 내보낸 것이다.
이에 MBC 예능프로그램 '일-아빠 어디가'를 겨냥한 것이란 반응이 컸다. 어찌보면 아류로 시작했지만 원조를 뛰어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자부심으로도 볼 수 있다. 단순히 하루의 속마음을 표현한 것일수도 있지만,  그 자막을 보며 '아빠 어디가'를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깨알 자막의 원조 MBC '무한도전'은 이제 자막으로 '할 말 다 하는' 수준이다. 특히 논란이나 파문을 일으킨 사안도 유머로 풀어내는 모습이 일면 능청스럽다.
지난 해 11월 방송된 극한 알바' 편에서는 오프닝에서 멤버들은 다 함께 모여 앞 일을 도모했는데, 유난히 텅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유재석은 멤버들에게 "왜 이렇게 점점 (중심으로)가깝게 다가오냐"라 말했고, 이 때 화면에는 '희한하게 갈수록 늘어나는 여백의 미'라는 자막이 흐르며, 한데 모인 멤버들 양 옆 텅빈 공간을 강조했다. 이는 바로 앞서 음주 운전 파문으로 하차한 노홍철의 빈 자리에 대한 간접 표현이었다.
보다 의미를 둘 수 있는 '디스'도 있다. 자사 간판 뉴스프로그램에 대한 풍자성이 짙은 방송도 있었던 것.
지난 해 11월 방송된 '공동경비구역'편에서 제작진은 정형돈, 길, 박명수를 소개하는 자막에 각각 '유글레나', '짚신벌레', '아메바'라는 자막을 삽입했다.
이에 네티즌은 앞서 지적을 받은 '뉴스데스크'의 이른바 '무개념 자막'을 꼬집은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뉴스데스크'는 인터뷰한 시민들의 이름을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 상인 등으로 무성의한 자막 처리를 해 논란을 낳았던 바다.
때로는 진짜 무개념 자막들이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할 때도 있다. 일부 네티즌이 비하해서 부르는 연예인의 별명을 그대로 삽입하는가 하면, 철저한 사전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잘못된 정보를 진짜 사실처럼 넣은 경우 등이다. 도발적이거나 무개념이거나, 자막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다음 사례는 단순 자막에서 그칠 얘기가 아닌데, 시청자를 농락하는 듯한 자막도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KBS 1TV'소비자 리포트'는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가구유통업체 이케아의 가격 거품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이 과정에서 브렌트 네이먼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브렌트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실제 인터뷰이가 발언한 것과 다르게 번역된 자막으로 등장해 '조작 방송' 의혹에 직면했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게시판과 각종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브렌트 교수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진실로 고쳐서 정정보도를 하라', '의도된 오역아닌가', '수신료가 아깝다' 등의 비난과 항의가 빗발쳤다.
실제로 인터뷰와 번역 내용을 비교해보면, "국가별 가격차 20%, 21%로 차이가 나는 것은 드문 경우가 아니다"는 내용을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고,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가격 차이가 있다는 게 내게는 그리 놀랍지 않다"는 멘트는 '그렇게 가격차이가 크다는 것이 놀랍다'고 정반대로 오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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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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