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와 첫사랑. 오는 2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쎄시봉'을 두고 일부는 1960년대 버전 '건축학개론'(2012)라고 칭한다. 물론 소재와 내용은 전혀 다르다. '쎄시봉'은 1960년대 후반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을 담았다면,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 건축학개론 수업을 통해 인연을 맺은 대학 신입생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추억이 된 남자의 첫사랑을 다룬다는 점은 일맥상통한다. 두 작품을 비교해 봤다.
# 첫사랑은 '나쁜X'이다
두 작품 모두 남자의 첫사랑을 다룬다. '건축학개론'을 본 30대 중후반 남성들이 "저건 내 이야기"라고 외쳤듯, '쎄시봉'을 본 중년 남성들의 반응도 그러하다. 누구나 첫사랑은 힘들고 서툴었단 이야기다. 동시에 첫사랑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소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를 떠나 20대 초반 청춘들이 보여주는 순수와 각 시대가 간직한 낭만이 두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한효주)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오근태(정우)의 모습에서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제훈)이 떠오른다. 그들의 첫사랑이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상대와 먼 훗날 재회한다는 점 모두 닮은 꼴이다. 마냥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건축학개론'이 남긴 명대사 '첫사랑은 나쁜X이다'는 '쎄시봉'에서도 통한다.
# 2인1역-현재와 과거
'건축학개론'은 당시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줬다. 인물들의 20대와 30대를 각기 다른 배우들이 맡은 것이다. 물론 어린시절에서 성인으로 바뀌거나 나이 차가 30~40년씩 나는 경우 2인1역을 맡는다. '건축학개론'은 10년 남짓의 세월 차임에도 같은 역할에 2명의 배우를 기용했다. 외모가 크게 닮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의 보는 재미를 더했다. 수지와 한가인, 이제훈과 엄태웅 등이 그들이다.
'쎄시봉'도 2인1역이다. 정우와 김윤석이 오근태 역을, 한효주와 김희애가 민자영 역을, 진구와 장현성이 이장희 역을 맡았다.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인물들의 20대와 40대를 그려낸다. '건축학개론'에 비해 '쎄시봉'은 20대들의 분량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김윤석과 김희애의 로맨스는 정우와 한효주의 그것보다 강렬하다. '센 캐릭터'로 익숙한 김윤석의 눈물은 애틋하게 다가온다.
# 국민첫사랑, 한효주vs수지
'건축학개론'에서 가장 빛났던 인물은 수지였다. "들을래?"라며 수지가 이제훈에게 이어폰을 내밀던 장면에서, 많은 남성 관객들은 이제훈에 '빙의'됐다.
'쎄시봉'에선 한효주가 홀로 반짝인다. 첫등장도 인상적이다. 비장한 표정으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낭독하다 음악에 맞춰 뒤집어쓰고 있던 보자기를 던져버리고 생기 발랄한 얼굴을 드러낸다. 정우 뿐만 아니라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순간이다. 당돌한 면모도 매력적이다. 치마 길이를 단속하던 시절 미니스커트를 즐겨입고, 깜찍한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인다.
주변 인물들도 흥미롭다. '건축학개론'엔 '강남오빠' 유연석이 있다면, '쎄시봉'엔 '교회오빠' 김재욱이 있다. 조정석이 '건축학개론'의 미친 존재감이었다면, '쎄시봉'에선 송창식 역의 조복래가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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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