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주말 예능 격전지에서 버틴다는 것은 분명히 재미가 있다는 방증일 터다. ‘런닝맨’이 어떻게 보면 유치한 게임이지만, 반전의 묘미를 살리는 구성과 멤버들의 내공 강한 지략 대결로 강한 생존력을 발휘하고 있다. 벌써 세 번째 유임스 본드 특집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게임 장치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았다.
지난 25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은 1년 만에 돌아온 유임스 본드 특집이 펼쳐졌다.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가 강한 유재석이 다른 멤버들을 속이고 물총을 쏴서 살아남는 구성, 이게 유임스 본드 특집이다. 벌써 세 번째인 이 특집은 유재석 스스로가 “‘런닝맨’ 역사상 최고의 아이템”이라고 자화자찬할 정도로 매번 반전의 즐거움을 안겼다.
이번에는 이광수가 함께 했다. 후계자 인수인계라는 구성으로 지석진, 김국진, 개리, 송지효, 하하를 속여야 했다. 다른 멤버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의 본체를 지켜야 한다는 임무로 알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든 게임을 통과하기 전에 유재석과 이광수가 이름표에 물총을 쏴야 했다. 단순한 물총 쏘기 게임이었지만 이미 5년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온갖 대결을 했던 ‘게임 선수’들을 속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종국의 의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광수의 잦은 실수로 인한 들통날 위기도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제작진이 유재석을 내세운 이유는 있었다. MBC ‘무한도전’과 ‘런닝맨’을 통해 추격전과 두뇌 싸움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유재석은 이광수와 함께 하나둘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 개리까지 제거하며 두 사람의 최종 승리로 결론이 나나 싶었다.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이광수가 유재석의 이름표에 물총을 쏘면 유재석이 가진 ‘유임스 본드’ 캐릭터는 영영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물총을 쏘지 않으면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스파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배신의 아이콘’ 캐릭터로 사랑받는 이광수는 당연히 유재석을 향해 물총을 쐈다. 제작진이 숨겨놓은 반전은 끝이 아니었다. 물총은 쏘는 순간 뒤로 발사되며 이광수에게 튀었다. 이광수의 배신은 결국 후계자 인수인계 실패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재석은 앞으로도 ‘유임스 본드’로 활약할 수 있다. 다소 유치한 장치, 어떻게 보면 뒤통수를 확 때리는 반전은 아니었지만 편안한 게임을 추구하는 ‘런닝맨’의 성격과 딱 들어맞았다. 게임 방식은 어렵지 않고 익숙해 즐길 수 있지만,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게 제작진의 숨은 노력이다.
‘런닝맨’은 고정 멤버들과 게스트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뒤통수를 치며 하나의 게임에서 누군가가 승리를 하면 끝나는 게임. 5년째 방송 중인 이 프로그램은 장수 예능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새로운 그림이 나올 수 없는 한계에도 매번 흥미로운 게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게스트가 출연할 때는 게스트의 색다른 매력 속 반전 결과에 주목을 하는 편이고, 이번처럼 게스트 없이 고정 멤버들끼리 대결을 벌일 때는 5년간 쌓아온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야기시킬지 예측하는 재미가 있다.
배신의 아이콘이자 어딘지 허술하기 그지없는 인간적인 이광수, 그리고 벌써 데뷔 20년을 훌쩍 넘겨 예능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웃음을 뽑아내는데 선수인 유재석이 함께 스파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웃음이 넘쳤다. “머뭇대는 순간, 너 죽어”라고 진지하게 상황극을 만드는 유재석의 말에 “뭘 그렇게까지...”라며 일부러 눈치 없게 상황극을 깨는 이광수의 조합이 시청자들을 웃게 했다. 워낙 친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광수의 작은 실수에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유재석,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깐족거림을 계속하는 이광수,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허술함 속 몸개그까지. 유임스 본드 3탄은 5년간 함께 달리고 게임을 한 두 사람의 캐릭터가 융합되며 즐거움이 배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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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좋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