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50억 패키지가 흥해야 하는 이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1.26 13: 40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명량’ ‘국제시장’ 같은 초대박 영화 한 편 보다 같은 기간 300만 영화 서 너 편 나오는 게 한국 영화 생태계를 위해 이롭다는 건 이제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관객 수가 아무리 증가 추세라 해도 인구 대비 한계점이 있고, 영화 산업의 제로섬 게임 속성을 감안한다면 대기업의 승자 독식 현상이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의 하향평준화를 뜻하는 단초가 된다.
‘국제시장’이 1200만 명을 돌파하며 ‘해운대’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를 앞섰다는 뉴스는 그래서 한편으론 놀랍지만 다른 한편으론 마냥 박수칠 수만은 없다. 물론 ‘국제시장’ 탓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밴드왜건 효과와 파급력 때문에 동 시기 적잖은 영화가 반환점 근처에도 못 가보고 다리에 쥐가 나야 했다. 총 제작비 100억 원이 든 하정우 연출작 ‘허삼관’이 80만 동원에 그쳤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호평과 높은 좌석 점유율에도 불구 상영관이 10여개로 쪼그라들었다.
시계 태엽을 한 두달 전으로 돌려봐도 상황은 흡사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기술자들’이 각각 214만, 256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 ‘카트’ ‘패션왕’ ‘우리는 형제입니다’ ‘나의 독재자’ ‘상의원’ 등이 약속이나 한 듯이 100만 턱걸이도 못한 채 쫓기듯 간판을 내려야 했다. 특히 117만 명을 모으는데 그친 ‘빅 매치’와 총제 100억 원이 소요된 ‘상의원’은 절반이 넘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상황이 심각한 건 올해 역시 ‘제2의 상의원과 허삼관’이 계속 나올 것이란 사실이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인건비와 제작비 상승,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감독을 기용한 무면허 100억짜리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해도 100억짜리 영화가 너무 흔해졌다는 인상이다. 이제 관객들도 100억 영화라 해도 놀라지 않고 ‘돈 좀 썼나 보네’라며 가볍게 넘길 정도다.
한 대기업 투자배급사 임원은 “공포와 로코를 제외하고 요즘 총제 베이스 50억 밑으로 제작할 수 있는 영화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며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과 배우들의 높은 개런티와 지분 참여, 시대극과 사극 열풍 등이 더해져 총제 100억이 우습게 쓰인다”고 토로했다. 극장 수입만으로 300만 명이 든다면 본전이겠지만 ‘상의원’ ‘허삼관’처럼 쌍코피가 터진다면 아찔한 상황의 연속이란 경고음이다.
해법은 없을까. 많은 제작자들은 ‘안전빵’에만 돈을 대는 투자사를 탓하고, 투자사는 참신한 아이템을 기획하지 못 하는 제작사를 흉본다. 한 영화사 프로듀서는 “톱 배우와 흥행 감독, 검증된 장르에만 돈을 대고 각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맞춰 시나리오를 뜯어고치는 투자사 때문에 한국 영화가 언젠가부터 공산품처럼 비슷비슷해졌다”고 말한다. 독특한 장르와 새로운 시도를 통해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투자사 임원들이 자리보전을 위해 안전한 기획에만 돈을 대니 힘없는 영화사일수록 그들의 입맛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첨예한 온도 차이를 보이는 양측이지만 유일하게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지점이 있다. 바로 50억 패키지 영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총제 기준 50억이면 대략 150만 관객을 동원하면 서로 웃으며 차기작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요즘 불붙은 IP TV 부가판권 시장을 감안하면 120만 정도로 BEP가 대폭 낮아질 수도 있다. ‘카트’ ‘나의 독재가’가 감독, 제작자의 한풀이에 그치지 않고 보다 영리한 방식으로 상업 영화의 미덕을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짙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화계에선 이번 주 개봉하는 ‘내 심장을 쏴라’가 어떤 결실을 맺을 지 주시하고 있다. 투자 단계에서 쇼박스가 발을 뺀 영화이기도 한 ‘내 심장’은 순제 26억 원이 소요된 미들급 영화다. 베스트셀러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비튼 작품으로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갇힌 두 청년의 탈출기를 그렸다. 이민기 여진구의 호연과 미장센 영화제에서 단편 ‘쌍둥이들’(07)로 수상한 문제용 감독의 데뷔작이다.
눈이 높아진 관객들이 이제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 해 어쩔 수 없이 대작을 기획해야 한다는 투자사에게 궁금하다. 공백이 길어져 잊혀질 뻔했던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와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히트는 뭘 의미하는 걸까. 관객은 화끈하게 폭파하고 화려한 한복이 나오는 스케일 큰 눈요기 영화만 원하는 게 아니다. 잠시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는 세련된 드라마, 새롭고 기발한 스토리텔링으로 웃고 울 수 있는 감정 정화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면 제작비와 무관하게 지갑을 열 것이다.
한때 아시아를 호령했던 홍콩 영화의 몰락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지고 있다. ‘국제시장’의 흥행과 50억이 넘는 배급수수료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렸다간 금융 위기 회복으로 드라마에 돈을 쓰기 시작한 할리우드의 매서운 맛을 보게 될지 모른다. 당장 오는 5월, 1000만 돌파가 예약된 ‘어벤져스2’가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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