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의 시한부 VS 김래원의 시한부[Oh!쎈 초점]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01.31 07: 59

‘시한부 선고’는 드라마 및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사건들 중 하나인 이 소재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소중하고도 치열한 마지막 순간들을 그리기 위해 사용되고는 한다. 보는 이들의 격렬한 반응을 쉽게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일까. 근래 들어 주인공이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등의 내용은 막장극에서 쉽게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값싼 소재로 치부되고는 했다. 보는 이들 역시 “또 불치병이냐”며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 하지만 최근 방송 중인 두 드라마에서 ‘시한부 선고’는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명연기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소재의 재발견이라 해도 될 정도다.
유동근은 KBS 2TV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말기 암에 걸린 ‘자식바라기’ 아버지 차순봉 역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병은 그의 사랑을 강조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다소 정통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음에도 이 드라마가 식상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시한부 선고와 병이 주는 고통,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는 암에 걸린 아버지의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고통에서는 한걸음 물러나는 대신, 그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 때문인지 드라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아버지의 비밀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전, 자녀들에게 ‘불효 소송’을 거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연합해 반발하고 대응하는 자녀들의 모습이 전반부였다면, 후반부에는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된 자녀들이 다시 연합해 아버지를 위해 착한 거짓말로 효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 심지어 드라마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엉뚱한 불효소송을 하는 동안 그의 위암 사실을 언뜻 암시하는 정도로만 그려내며 소재 자체가 줄 수 있는 무거움을 덜어냈다.

아버지가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린 사실이 한참 동안 극의 전반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무거움을 덜어내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반전의 효과도 컸다. ‘불효 소송’이라는 엉뚱한 일을 벌였던 아버지의 기행은 사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려 본 이기적인 선택이자, 자녀들을 향한 애달픈 사랑이었다. 이는 받아들이는 이들의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지난 25일 방송된 47회에서 드디어 “고맙다”며 자녀들에게 속내를 밝히는 아버지 순봉의 모습이 유독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SBS 월화드라마 ‘펀치’ 속 김래원의 시한부는 그가 오랫동안 의리로 충성해 온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간 검찰 총장인 태준(조재현 분)의 수하로 충실하게 살아온 정환(김래원 분)은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 때마침 전 아내이자 딸 예린(김지영)의 엄마인 하경(김아중)이 태준과 대립을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놓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결국 전부인의 편에 서게 됐다.
사실 그 전까지 딸과 하경을 지키는 문제와 태준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은 조금 골치가 아프긴 해도 정환에게는 양립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두 인물이, 한 쪽이 죽지 않으면 한 쪽이 죽게 되는 식의 극단적으로 전개돼버린 상황 속에서 그의 시한부 생은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선택하게 만들었다. 재밌는 사실은 정환이 단순히 '정의', 혹 더 올바른 삶을 선택하기 위해 태준을 버린 것이 아니란 점이다. 죽음 앞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더 본능적이고 본질적이었다.
정환의 시한부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제시된다. 반전의 요소가 아닌 인물을 처절함으로 몰아가기 위한 환경인 것. 이는 결국 죽음 앞에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독함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현재 정환의 가족들은 그의 뇌종양 수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 반면, 정환의 적인 조강재(박혁권 분)는 그가 먹어야 하는 약을 약점 삼아 그에게 협박을 하며 악랄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약함이 적에게는 약점으로 이용되는 상황은 보는 이들에게 딸과 하경을 지키는 동시, 홀로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정환의 처절한 고독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한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시한부는 결국 인간으로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을 찾고 지키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 왜 이래'의 순봉과 '펀치'의 정환은 모두 죽음을 앞두고 절절한 부성애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면을 갖고 있다. 한쪽은 가족애라는 가치로 인해 인생의 밝은 면을, 또 다른 쪽은 결국 혼자일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독을 그리며 인생의 무겁고도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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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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