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남 1970’(유하 감독)은 시사회 후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보다는 폭력성 짙은 잔인한 장면이나 ‘베드신’ 등이 화제가 됐다. 관심을 모을 만 했다. 그만큼 ‘강남 1970’은 1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영화적이면서도 강렬한 장면들을 묵직하게 이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그저 외적인 화려함이나 멋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렬한 이미지들은 그 시대가 가진 야만성을 부각시키며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극 중 주인공 종대(이민호 분)를 친 아들처럼 키운 중간 보스 길수 역을 맡은 배우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읽어본 후 작품의 매력을 느껴 빠르게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평소에도 작품 결정이 빠른 배우인 그는 이번 작품도 읽어보고 난 후 시나리오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결과물에 만족하는 편이다.
“영화적인 무게가 있는 작품이죠. 생각보다 수위가 세서 좀 놀란 건 있는데 애초부터 ‘청불’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고, 그래서 마음껏 만드신 거 같아요.”

정진영은 ‘강남 1970’에 앞서 개봉한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 필모그래피에 세 번째 천만 영화를 새겨 넣게 됐다. 영화배우로서의 가치가 관객수로 평가되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뿌듯할만한 일이다.
“고맙고 감사하죠. 인구 오천만 국가에서 천만 관객은 놀라운 일이에요. 이건 관객 분들이 스스로 세운 기록이에요. 영화 만드는 사람은 만든 데까지가 전부에요. 그래서 참 고마운 거고요.”
길수는 배반과 응징이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종대와 끈끈한 감정을 공유하는 인물이다. 보통 느와르 영화에서는 두 남자의 관계가 ‘의리’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하지만, ‘강남 1970’에서 보이는 길수-종대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오히려 가족애, 혹은 부성애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잘 어울린다. 피를 나눈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생각하는 깊은 정이 있고, 때로는 진짜 아버지와 아들처럼 각자가 서로를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 다툼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 깊이 담겨있는 건 외로움이에요. 땅과 가족이란 화두가 있고, 가족을 쟁취하는 사람들, 뺏으려는 사람들 가족의 몰락이 그려지죠. 모두가 끊임없이 가족을 원해요. 가족이 없는 천애 고아 종대는 유사 가족을 구했고, 용기는 자신의 가족을 꾸리려고 하고요. 가족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가족을 왜 원하느냐면 외로워서 그래요. 외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기댈 데를 찾는데 두 청년은 못 찾아요. 서로의 외로움 받아주려 했지만 지켜주지 못한 거고요. 비극이에요. 개인적으로 비극을 좋아합니다. 고전 속에 있는 비극들은 가슴을 휘어잡아요.”
가족애를 그려서일까? 길수는 조직의 중간 보스 출신이지만, 전혀 건달 같은 느낌이 없다.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은 그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의 소시민 가장으로 그려진다.
“건달스럽게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생계형 건달인데, 정치 깡패를 하려니까 금방 손을 떼려고 하는 사람이죠. 극 중 몇 번씩 보는 게 장부에요. 책을 보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날의 장부였어요. 돈을 얼마 주고, 얼마 나오고 그런. 그래서 또 지적인 깡패는 아니고, 이 사람은 그렇게 정치에 얽히는 걸 원치 않고, 두목의 죽음을 바라보면 느낀 환멸 때문에 건달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죠. 딸한테 떳떳하기 위해 건달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고요. 건달에 맛 들인 사람이 아니에요. 건달 노릇을 한 거지. 그래서 손 씻으려고 세탁을 해요.”
정진영은 세탁소에 대한 친절한 해석도 덧붙였다.
“세탁소는 말 그대로 옛날에 사실, 그런 게 있었어요. 주변에 보면 세탁소 아저씨에 대해 수군수군 ‘감옥 갔다왔다 하더라’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세탁 기술을 감옥에서 배우는 거죠. 과거를 세탁하다는 의미에요. 그래서 고안했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자본이 많이 필요없는 기술인데 길수는 열심히 하지만 그걸로 임대료는 못 내는 세탁소 주인이니까, 위기를 맞이해요.”,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이라 불리는 작품의 마지막 편이다. 그래서일까, 전편들보다 주제는 무거워지고, 스케일은 커졌다. 정진영 역시 완성된 영화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감독님이 이번에 가장 세게 가신 거 같아요. 감독님이 하시고 싶은 얘기를 다 터신 셈이죠. 감독님은 그런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시는데, 이런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싶어요. 사람들마다 운명적인 얘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교과서애 보면 학자가 작가는 평생 하나의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변주되는, 내면에 들어있는 얘기가 하나 있는 거예요. 감독님은 그만 터시려고, 세게 만드신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유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좋아했어요. 또 원래 시인이시잖아요. 한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이죠. 문학가로서의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있었던 거 같아요.”
‘강남 1970’의 다소 수위가 높은 장면들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실제 ‘강남 1970’에는 베드신도 피가 난무하는 액션 신도 여러 번 등장한다.
“많이들 무서워한다고 하더라고요. 익숙한 액션은 아니니까. 이 영화의 특징이 그런 거예요. 이 영화의 숙명이니 정면 돌파를 해야 하고, 높은 수위의 액션 묘사가 그 시대를 휘감는 정조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격렬함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험악한 시대였고, 그랬던 그 시대를 묘사하는 강렬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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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