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성은 한번도 청춘스타였던 적이 없다.
그는 완벽한 비주얼로 보는 사람의 턱을 쭉 늘어뜨리게 하는 부류의 배우가 아니다. 고성을 내지르며 쫓아다니는 오빠 부대를 거느린 적도 없다. 그가 주연급으로 올라선 건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이라고 풀이됐다. 그래서 이보영과의 연애와 결혼도 인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MBC '킬미 힐미'를 통해서다. 무려 7개의 인격을 가진, 무서우면서도 불쌍한 차도현 역을 맡은 그는 여심을 제대로 '저격'하면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그의 표정을 이리 저리 엮은 '움짤'이 돌아다니고, 각 인격별로 팬덤이 형성되고 있기까지 하다. 유부남 스타가 이토록 핫해지는 건, 아마도 2011년 '최고의 사랑' 차승원 이후 4년여만인 듯하다.

사실 차도현은 잘못 연기하면 오글거리기 딱 좋은 인물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다중인격이 종종 다뤄지긴 했지만,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다 딴 사람의 눈빛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그 연기톤에 따라 시청자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 '너에게 반한 시간'을 줄줄 읊는 신세기의 대사나, 머리에 핀을 꽂고 팔짝팔짝 뛰는 요나의 모습도 그렇다. 자칫하면 배우에게 '흑역사'를 안길 수도 있는 위험한 장면이다.
그런데 지성이 잘해냈다. 그는 각 인격간의 차이점을 기가 막히게 포착해내며, 정말 다른 사람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아이 메이크업의 덕을 좀 보긴 했지만, 차도현과 신세기에서 지성은 완전히 다른 눈빛에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데 성공하며 유약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 시청자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 시청자를 모두 끌어들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지성이 한 우물만 파온 '여심 전문' 배우였다면 어려웠을 일일지도 모른다. 지성의 한 관계자는 그가 꾸준히 다양한 작품을 통해 경력을 쌓아온 게 유효했다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오랜 기간 다양한 색깔의 다양한 인물을 소화해온 노하우가 한 작품 안에서 폭발적으로 보여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한두가지 면만 알았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지성의 여러가지 모습을 한번에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그는 드라마 '비밀'에서 치명적인 섹시함을 살짝 보여준 바있고, '보스를 지켜라'에서 찌질한 코믹 연기를 하기도 했다. 영화 '나의 PS 파트너'에서는 농도 짙은(?)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했다. 그가 해온 거의 모든 캐릭터가 이번 '킬미 힐미'에서 집대성되고 있는 것.
특히 모범생에 가까운 외모로 반듯한 이미지가 강했던 지성 스스로가 망가지는 걸 굉장히 즐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계자는 "요나 캐릭터를 소화할 때도, 날라리 느낌이 더 나게 헤어 드라이를 직접 더 하는가 하면, 본인이 더 이런 저런 설정을 더하는 열의를 보였다"면서 "배우, 제작진들과도 서로 소통을 많이 하면서 현장에서도 화기애애하게 다양한 의견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심이 움직이면 당연히 시청률도 움직인다. '킬미 힐미'는 수목드라마 중 유일하게 두자리수를 돌파하며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성에게는 벌써 광고 제의가 잇따르고 있으며, 신세기 아이라이너, 요나 립밤 등 히트 상품 탄생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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