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35, 서울)가 국가대표 은퇴 경기를 하얗게 불태웠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결승서 호주와 연장 혈투 끝에 1-2로 석패했다. 이로써 지난 1988년 이후 27년 만에 결승에 올랐던 한국은 55년 만의 정상 탈환에 한 계단을 남겨두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차두리는 이날 라이트백으로 선발 출전해 공수에서 활발히 우측면을 누볐다. 수비 활약도 빛났다. 자신보다 11살 어린 매튜 레키를 상대로 철통 수비를 선보였다. 수를 내다본 반박자 빠른 대응과 남다른 피지컬서 나오는 몸싸움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전반 32분엔 차두리가 상대의 공격을 영리하게 막아내자 한국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전반 38분엔 폭풍 오버래핑을 선보였다. 상대 수비수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의 폭주기관차 같은 스피드를 뽐냈다. 차두리는 이정협의 패스를 받아 폭풍 질주 후 박스 안의 손흥민에게 정확히 볼을 내줬다. 우즈베키스탄 8강전 쐐기골 장면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회심의 오른발 슈팅은 수비 발에 맞고 무위에 그쳤다.
차두리는 후반 들어서도 불꽃 투혼을 불살랐다. 한국이 0-1로 뒤지자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여전했다. 종료 직전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로 극적인 은퇴 드라마가 쓰여지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연장 전반 15분 트로이시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며 좌절했다.
차두리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지난 2001년 이후 10년 넘게 달았던 태극마크다. 그는 이번 대회 최고참으로 전성기 못잖은 활약을 펼쳤다. 개막 직전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보란 듯이 이겨냈다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2차전, 우즈베키스탄과 8강서 도움을 기록하며 결승행에 크게 일조했다.
원하던 아시안컵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차두리는 지난 2004년(8강 탈락) 막내로, 2011년(3위)엔 최고참으로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두 대회 연속 눈물을 삼켰다. 대표팀 은퇴 무대였던 이번 대회서도 결국 정상의 기쁨을 맛보지는 못했다.
이제 차두리가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폭풍 질주는 우리의 뇌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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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호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