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마다 장기가 있다. 누군가는 스릴러에서, 누군가는 드라마에서 힘을 발휘한다. 김현석 감독은 멜로다. '광식이 동생 광태'와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그러했다. 5일 개봉하는 영화 '쎄시봉'(제작 제이필름)은 '열한시'(2013)로 잠시 외도했던 김현석 감독이 가장 잘하는 장르로 돌아왔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만듦새는 매끄럽다. 중반까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반전을 보여준다. 백화점이 뒤로 물러나는 상상 신에선 재기발랄함이 돋보이고, 오근태의 40대를 연기한 김윤석이 등으로 보여주는 눈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적신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웨딩 케이크'와 '나 그대에서 모두 드리리' 등을 비롯해 '사랑이야' '조개껍질 묶어' 등 듣는 즐거움도 풍성하다.
순박한 미소 때문인지, 김현석 감독은 영화 속 20대의 오근태(정우)와 닮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극중 에피소드 중 본인의 실제 경험담도 들어 있었다. 이하 김현석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캐스팅이 매우 화려하다. 40대의 오근태를 연기한 김윤석은 의외였다. 장르적으로도, 분량 면에서도 그동안 김윤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김)윤석 선배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멜로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20년 전 사건으로 인해 캐릭터가 변화한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분량은 20대가 많지만, 윤석 선배가 연기하는 40대의 공항신이 매우 중요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 장면을 향해 달려간다는 마음이었다. 이 장면을 두고 고민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결정한 이후로는 단 한 줄도 바꾸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다. 머리로 생각한 게 아니라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공항 신에서 김윤석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신선했다.

"그런 쾌감이 있었다. '천하의 김윤석이 우는 구나'하는 쾌감이 있었다. 윤석 선배는 그동안 작품에서 남을 울리기만 하지 않았나. (웃음)"
=그 장면에서 김윤석의 정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들썩이는 등을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먹먹하더라.
"윤석 선배의 정면을 찍기도 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보니 뒷모습의 느낌이 훨씬 좋았다."
=특별출연한 김인권은 실존인물인 가수 조영남 역을 맡았다. 똑 닮았더라.
"특별출연이라 출연 횟수에 제한이 있었다. 영화에 3번 나오는데 요소요소에 강렬하게 등장해 예고편에도 등장했다. 특별출연인데 노래 연습을 너무 많이 시키는 건 아닌가 해서 노래 부분은 대역을 쓸까 했다. 그 직전 작품이 영화 '전국노래자랑'이어서 이미 보컬 트레이닝이 돼 있었다. 덕분에 굉장히 도움이 됐다."
=20대 민자영 역의 한효주가 정말 아름답게 나온다. 반사판을 유난히 많이 쓴건 아닌가.
"(웃음). 이런 장르에서 여배우는 무조건 예쁘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중 뮤즈이지 않나. 뮤지션들을 좌지우지 하려면 예뻐야 한다. 하지만 (한)효주씨가 예쁘기만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잘 해줘서 그렇다. 효주씨는 매 테이크마다 다른 느낌으로 연기를 한다. 여배우로선 드물다. 또 철저한 자기 해석이 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민자영은 선머슴 같은 스타일이었다. 효주씨 말이 본인의 전작인 '반창꼬' 속 캐릭터와 겹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제인 버킨 이야기를 꺼냈다. 의상과 스타일 때문에 참고했던 인물이었다. 제인 버킨을 비롯해 1960년대 문학 작품을 참고했다. 효주씨의 그런 자세가 좋았다."
=민자영의 첫 등장이 인상적이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비장한 표정으로 읊다가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보자기를 던지고 춤을 춘다.
"사실 유치할 수 있는 장면이다. 효주씨가 잘해줬기 때문에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20대의 오근태(정우)와 민자영의 에피소드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실제 경험담이나 실화 바탕이 있나.
"물론 창작이다. 민자영이 오근태에게 소아마비를 앓는 여동생이 있다고 거짓말 하는 에피소드는 내 경험담이다. 대학교 시절 좋아하는 여자 후배가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고 하더라. 여동생과 얼굴이 똑같으니 자신이 대학 시험을 봐준다고 했다. 혼자 그 말을 믿었다. 믿는 걸 떠나서 '난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하고 속상해 했다. 좋아해서 속았던 거다. 오근태 역시 민자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속은 거고."
=민자영은 마냥 착하지 않아 매력적이다. 팜파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남녀 관계는 상대적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다. 민자영도 누군가에겐 바보였고, 오근태도 누군가에겐 마초다. 민자영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다. 현실적인 거다. 또 여자들이 사실 무섭기도 하고. (웃음) 민자영도 자책하고 미안해한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남자든 여자든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는 거고."
=송창식 역의 조복래는 스타들 사이에서 빛나는 얼굴이다. 연기에서 신인답지 않은 패기가 느껴진다.
"강하늘도 촬영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개봉할 때 되니까 스타가 됐다. (웃음) 송창식 역을 캐스팅할 때 처음엔 가창력이 우선이었다. 뮤지컬 쪽에서 이른바 A급 배우들은 대부분 오디션을 진행했다. 아무래도 송창식 선생님이 상당한 실력을 갖춘 '톱 오브 톱' 가수이다 보니 그랬다. 노래로는 송창식 캐릭터를 만족시키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결국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연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력과 이미지 위주의 느낌을 갔다. 조복래는 개량 한복을 입고 바가지 머리를 한 채 오디션에 참여했다. 사실 그렇게 오디션에 참여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지만, 음악 감독이 권했다. 긍정적인 끼가 느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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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