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천재’ 윤빛가람(25·제주)이 조용히 부활의 칼을 갈고 있다.
2일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윤빛가람은 수염이 꽤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훈련에만 몰입하다보니 깎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축구 대표팀이 27년 만의 아시안컵 준우승을 일궈내며 뜨거운 관심을 받을 때 윤빛가람은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옛기억을 생각하면 마음은 복잡 미묘하다. 그는 아시안컵 얘기를 꺼내자 “4년 전이 생각이 난다”며 나즈막히 말했다. 이어 “내가 한 만큼 돌아오는 거니까…(다시 대표팀에서)뛰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말했다.
윤빛가람은 불과 스무살의 나이에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천재 미드필더’로 꼽혔다. 만 20세인 지난 2010년 8월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 데뷔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2011 아시안컵에서 숙적 이란과의 8강전에서 왼발슛로 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4강에 올려놓았다. K리그 데뷔 후 2년 연속 공격포인트 15개 이상씩을 기록했다. ‘샛별’ 윤빛가람의 축구인생은 거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윤빛가람은 경남을 떠나 성남 이적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외 진출을 꿈꾸다 원치 않은 팀으로 이적한 2012시즌 공격포인트 4개에 그쳤다. 그러는 사이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엔트리에 탈락했고, A대표팀에서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동기부여를 잃게 되면서 소속팀에서도 찬밥 신세가 됐다. 창의적인 패스와 공격 감각에 비해 수비력과 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번 떨어진 자신감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U-17 대표팀 시절 은사인 박경훈 감독이 이끄는 제주로 이적했지만 예전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의 기대치엔 여전히 부족했다.
윤빛가람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번 자신감이 떨어지다보니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초심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1명이라도 응원하는 팬을 위해, 그리고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는 팀을 위해서도 올해는 더 많이 뛸 것”이라고 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조성환 감독도 윤빛가람의 부활 의지와 가능성을 믿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지난 시즌 득점력 부족에 고생했던 제주는 올시즌 4-3-3에 중심을 둔 공격적인 전술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윤빛가람과 송진형 등 재능있는 미드필더들의 공격적 역할을 최대한 살리려는 계산이다.
윤빛가람은 “감독님이 삼자간의 움직임을 통해 수비를 교란하는 움직임을 강조한다. 조금 더 전진된 위치로 올라간 만큼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자신감을 찾겠다”고 했다. 그는 “초반에 스타트를 잘 끊는다면 10골-10어시스트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의 당찬 패기는 사라진 대신 조용하고 묵직한 말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부진의 강을 건너 다시 정상에 오르려는 윤빛가람의 2015년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맺을까. 성공한다면 한국 축구도 잃어버린 보석을 다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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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나이티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