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쎄시봉', 꿈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 [인터뷰①]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2.04 07: 30

해당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 김윤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의 연기도 그렇고, 인터뷰할 때 그의 답변도 그렇다. 5일 개봉하는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제작 제이필름)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장르적으로, 분량 면에서 대중이 익숙한 김윤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물론 세월에 찌든 40대 역할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김희애와의 애틋한 멜로 호흡부터 숙취 상태로 깨어나는 일상적인 장면까지, 돼지뼈를 들고 누군가를 쫓던 김윤석의 서슬 퍼런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쎄시봉'은 1960년대 무교동 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꿈에 대한 이야기다. 김윤석과 정우, 김희애와 한효주, 장현성과 진구가 2인1역으로 각 인물들의 40대와 20대를 연기한다. 정우가 연기하는 오근태가 순박한 20대라면, 김윤석의 오근태는 피로 가득한 40대다. 푸석푸석하고 건조하다. 외모를 떠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김현석 감독 말대로 "정우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길래"다.
김윤석은 이에 대해 "첫 지문이 '너무나 달라진 오근태'였다"고 말했다. 김현석 감독은 김윤석에게 "정우와 싱크로율을 맞춘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40대의 오근태는 20대의 오근태와 많이 달랐으면 했다. 김윤석도 이에 공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쎄시봉'은 "꿈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절절이 와 닿았다".
그는 40대의 오근태를 통해 자신의 동료들을 봤다. 김윤석은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어느덧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동시에 연기를 그만두고 떠나가는 동료들의 모습도 지켜봤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선후배들은 어느덧 직장인이 됐다. 김윤석은 "많이 달라지더라"며 "몸에 밴 친절, 타인에 대한 리액션 등 직장인 특유의 모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40대가 되면 하나둘 포기하는 게 생긴다. 그래야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30대는 괜찮지만, 40대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런 데서 오는 애틋함이 있다. 극중 라스베이거스 출장 중 직장 후배에게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흘러가는 장면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론 안타깝고 절절하다."
그의 상대역은 김희애다. 정우와 한효주의 로맨스가 총천연색으로 그려진다면, 김윤석과 김희애의 로맨스는 모노톤이다. 그만큼 절제돼 있다. 공항에서 20년 만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속내를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김윤석은 "'쎄시봉'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항 신에 있다"며 "중요하지만 짧고 밋밋하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40대의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석이 주저앉아 우는 장면은 백미다. 20년 전 매듭짓지 못한 이야기의 결말이다. 단단해 보이는 등을 들썩이며 우는 남자는 드디어 과거와 화해한다. 긴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김현석 감독은 "천하의 김윤석을 울렸다"고 표현했다. 촬영할 때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물어보자 "1주일 동안 미국에서 촬영했는데, 일정이 빡빡했다. 두 테이크만에 끝났다"고 웃었다.
영화 촬영 순서는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됐다. 정우, 한효주, 진구, 강하늘, 조복래 등이 먼저 20대 시절을 촬영했다. 이후 김윤석, 김희애, 장현성 등이 앞선 촬영 분량을 본 후 40대 시절을 연기했다. 영화에선 인물들의 그 사이 시간들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김윤석에게 '그 일' 이후 오근태는 어떻게 지냈을지 물어봤다. "속상하니까 아예 발길을 끊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음악도 아예 안 들었을 거다. 그래도 머리에선 계속 맴돌았겠지. 가슴에 철판 하나를 얹고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속에는 있는데 숨기고 살아가는 거다. 하지만 20년 후 미국에서 이장희를 만나면서 봉인이 서서히 열리는 거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아니까 결국 닫아버린다. 민자영을 만나고 결국 봇물이 터져버린다. 하지만 아마 그 후에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을 거다."
그래서 오근태는 과거를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을까. 김윤석은 "조금은 자유로워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 신에서 오근태는 '난 니가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사건의 전말을 알면 민자영이 괴로운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한 거다. 끝까지 배려한 거다. 굳이 털어놓을 필요도 없고. 행여 과거의 오근태의 모습이 나올까봐 민자영과 만나는 장면에선 일부러 말도 띄엄띄엄하고 되도록 말도 하지 않는 거다."
30대 중후반 남자들이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 공감했다면, 중장년 남성들은 '쎄시봉'에 반응했다. "이건 내 이야기"라는 거다. 그만큼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윤석은 껄껄 웃었다.
"첫사랑이 이뤄지는 건 100명 중 1명이지 않나. 첫사랑의 형태도 다양하고, 지나고 나서 그게 첫사랑인 줄 알기도 한다. '쎄시봉' 보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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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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