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제작 제이필름)은 첫사랑 이야기다. 1960년대 후반을 주된 배경으로 해 '복고'로 분류되고, 쎄시봉을 소재로 해 '음악영화'로 불린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의 낭만과 사랑이다. 아쉽게도 그것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을 바란다. 정우와 한효주가 그리는 20대의 사랑은 찬란하지만, 동일한 역을 각각 맡은 김윤석과 김희애가 표현한 40대의 로맨스는 애잔하다.
김윤석에게 그의 실제 첫사랑을 물었다. 답변을 머뭇거렸다. 정우는 실명까지 말했다고 하자 "(정우는)결혼을 안했으니까"라며 답했다. 질문을 조금 바꿨다. '남자의 첫사랑'은 왜 항상 '쎄시봉' 속 민자영(한효주, 김희애)처럼 '나쁜 여자'인지 물었다. 그것은 기억 속 모습이라고 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찬란한 존재, 같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니라는 불안감 등 젊은 시절엔 사랑이 그렇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흥미로운 장면- 수줍은 김윤석
'쎄시봉'에선 수줍은 김윤석과 우는 김윤석, 노래하는 김윤석 등을 만날 수 있다. "40대의 멜로는 20대의 그것보다 뜨겁다"라고 말했지만, 화면 속에서 그는 김희애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한다.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뜨거운 멜로라기에 기대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자 "농담 한 번 했는데 자꾸들 말한다"고 투덜거렸다. 그가 생각하는 40대의 멜로가 궁금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를 예로 들었다.
"좋은 멜로는 삶과 연관된 멜로가 아닐까 싶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멜로여야 한다. 판타지이거나 거짓말이 아니다. 20대는 사실 사랑인지 아집인지도 모르지 않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론 상대방을 괴롭히는 실수들을 한다. 예를 들어 '너를 사랑해서 내가 이렇게 됐다'든지. 40대에는 지혜와 절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뜨겁다는 거다."
# 의외의 장면- 우는 김윤석
대중들이 기억하는 김윤석은 누군가를 쫓거나 누군가에게 쫓겼다. 영화 '추격자'(2008) '황해'(2010) '도둑들'(2012) 등을 떠올리면 김윤석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쎄시봉'에선 걷기만 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았지만, 그만큼 감정적인 면에서 섬세함이 요구됐다. 그는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연기를 할 때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윤석이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먹먹하고 또 강렬하다. 주저앉아 등을 보인 채 어깨를 들썩인다. 사실상 '쎄시봉'의 결말이다. 김현석 감독은 "항상 남을 울리기만 하던, 천하의 김윤석을 울린 쾌감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촬영할 때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물어보자 "1주일 동안 미국에서 촬영했는데, 일정이 빡빡했다. 두 테이크만에 끝났다"고 싱거운 답을 내놨다.
# 반가운 장면- 노래하는 김윤석
김윤석의 노래 부르는 목소리는 꽤 감미롭다. 후반부 장현성과 함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른다. 따로 트레이닝을 받진 않았다. 기타 역시 원래 연주할 줄 알았다. 영화 '즐거운 인생'(2007)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는 록밴드 멤버였던 그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역시 꿰고 있었다. "대학 시절 기타를 만져본 이라면 누구나 거쳐 간 통기타 노래의 고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연극 동아리에 '올인'했던 대학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에 통기타 서클이 서너 개씩 있던 시절이었고, 강변 가요제 시즌만 되면 밤새도록 연습을 했단다. 그중엔 친구들도 있었다.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르는 애들이 많았다. 가수가 되서 활동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가수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머니 노래교실의 선생님 정도? 40대의 오근태에서 그런 모습을 본 거다. 꿈을 잃어버린 남자를 말이다."
김윤석이 영화 '화이'(2013) '해무'(2014) 등을 통해 극적인 인물들을 보여줬다면, 영화 '쎄시봉'은 일상으로의 회귀였다. 그는 다시 극한의 드라마로 돌아간다. 내달에는 영화 '검은 사제들'로 강동원과 호흡을 맞추고, 오는 5월에는 영화 '극비수사'가 개봉한다. 그 다음 작품은 정해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숨차다"고 버럭 했다.
"최근 1~2년 동안 패턴이 빡빡했다. 2년에 3편 정도가 원래 패턴이었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렇게 됐다.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갈 거다."
'쎄시봉'에서 보여준 묵직하면서 울림이 있는 그의 연기처럼, 묘한 고집이 느껴지는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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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