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정에 꼭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꼭지’와 원빈 조카다. 김희정은 어린 시절 KBS 2TV 드라마 ‘꼭지’에서 주인공 꼭지 역을 맡아 귀여운 외모와 조숙한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그는 원빈의 조카 역을 맡았고, 이후 원빈이 톱스타로 성장함에 따라 ‘원빈의 조카’ 역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로 이목을 끌었었다.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 막 성인 연기자로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김희정은 조급함이나 부담감 없이 천천히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히는 그는 이미, 보통의 20대 배우가 갖기 어려운 성숙함을 갖추고 있었다.
“아직은 제가 연기자로서, 배우로서, 작품으로 보여드린 게 없는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런 좋은 작품으로 멋지게 인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역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부담은 없었어요.”

그런 김희정이 성인 연기자로서 본격 첫 발을 뗀 작품이 KBS 2TV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이다. ‘왕의 얼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광해(서인국 분)의 아내 세자빈 유씨. 첫 등장부터 당돌한 매력을 발산했던 그는 광해의 영원한 마음 속 정인 가희(조윤희 분)와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남편의 곁을 지키는 여장부다.
“처음에는 되게 설레기도 하고 어떻게 보실까 그런 기대도 됐고요. 현장에서 워낙 재밌게 촬영하고 있어서 우리 배우들과 스태프가 즐기는 만큼 결과도 많이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왕의 얼굴’에서 많이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연기 경력으로만 치면, 남편 역을 맡은 서인국보다 한참 선배다. 그로 인해 놀림을 받기도 한다고. 하지만 김희정은 현장에서 귀여운 막내로 다른 배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인국 오빠가 놀리기도 했어요. 선배님 아니냐고요. (웃음)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니까 현장에서 호흡하는 것도 재미있고, 다들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완전 막내에요. 인국 오빠와는 5살 차이가 나고요. 인국 오빠와 조윤희 언니는 또 5살 차이가 나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인국오빠에게 ‘연상 연하 다 얻었다’고 놀리기도 하세요.”

방송은 2008년 ‘착한 여자 백일홍’을 끝으로 잠시 쉬었다. 아역 배우에서 성인이 되기 전 청소년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일이었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성향과도 잘 맞았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와서인지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모든 시간들이 배우로서 경험을 쌓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성격 자체도 좋아하는 일들이 나를 표현하는 일이었고, 그런 것에 있어서 나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 배우라는 직업을 큰 고민 없이 계속 꿈꾸게 됐고요. 활동을 안 하는 때에도 학교에 잘 다니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놀 때는 놀고, 음악도 많이 듣고, 배울 게 있으면 많이 배우고 그랬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1학기를 하고 휴학을 한 상태인데, “언제 복할할지”는 아직 모른다. 경험으로 배워보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란다.
아역배우에게는 어린 시절 맡았던 인상 깊은 역할 하나가 성인 배우로 성장하는 데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는 한다. 천천히, 여유롭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김희정이지만 배우로서의 욕심도 없을 수 없는 일. 여전히 원빈 조카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없을까?
“원래 ‘꼭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원빈 조카’가 되더라고요. 원빈 오빠의 존재가 커지니까 생긴 것 같아요. 전에는 그냥 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시고 사랑을 받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에는 계속 연관검색어에 있으니까 어떤 분들은 마케팅을 하려는 거 아닌가?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또 제가 진짜 원빈 조카인가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웃음) 작품으로 다른 수식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굳이 아역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차근차근 활동을 해가다보면, 연기로 인정을 받고 자연스럽게 배우로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지만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 특유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굳이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전 그냥 걱정보다 자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은 게 좋은 거 같아요. 보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봐주시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아역 때 했던 연기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연기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고요. 주관이나 자기 생각이 뚜렷한 게 좋은 것 같아요.”

김희정은 아역이라는 이미지에 얽매이기보다, 연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한 태도가 배우로서의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그런 고민을 했어요. 미팅을 하면 어떤 감독님은 ‘아역을 했으니까 믿음이 간다’고 그런 부분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아역 연기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면서 변화해야하는 부분을 걱정하는 분도 계세요. 당연히 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배우가 계속 오래 연기를 하는 건 변화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찍어 보고 싶은 장르의 작품은 액션이다. 아직 멜로보다는 활동적인 작품을 찍어보고 싶다고 한다. 요즘 들어 관심을 갖는 취미는 슈퍼바이크. 실제 면허를 땄고 타기도 헀지만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로 자유롭게 즐기지는 못한다고.
“(슈퍼바이크는) 진짜 재밌었어요. 제가 좋아하지만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그런 장르였거든요. 이게 기회다 싶어서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걸 같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슈퍼바이크’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어요. ‘탑 기어 코리아’라는 프로그램도 좋아했었거든요. 진짜 재밌게 했죠.”
성숙하고 차분해 보인다는 말에 “사실은 엄청 까불이에요”라고 말하는 김희정은 기억 속의 아역배우와는 또 다른, 까도, 까도 또 다른 면이 나오는 양파 같은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꼭지라는 어린 시절 타이틀에만 가둘 수 없는, 여배우 김희정이 기대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배우로서 김희정이 가진 목표는 ‘작품을 통해 뭔가 궁금하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작품으로 뭔가 궁금하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희정,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런 걸 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에 예쁜 분들도 정말 많고, 아이돌 분들도 많잖아요. 연기 활동을 하니까 대체 불가능한 그런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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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