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분석] LG, '빅뱅' 이병규 시대 도래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5.02.04 06: 11

“걱정 마십시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LG 트윈스 외야수 이병규(7번·32)는 당당했다. 2014년 4월초 “올해 자신 있다더니 어떻게 된 것이냐?”는 백순길 단장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병규는 4월 10일까지 8경기에서 17타수 3안타(타율 0.176)으로 부진했고, 4월 11일 1군 엔트리서 제외됐다. 코칭스태프의 결정은 아니었다. 이병규 스스로 타격 밸런스를 잃어버렸다며 2군행을 자청한 결과였다.
이병규가 자신감을 증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4월 22일 1군으로 돌아왔고, 엔트리 말소 없이 시즌을 완주했다. 2014시즌 성적은 타율 3할6리 16홈런 87타점 OPS .956.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소화하며 LG의 주축이 됐다. 홈런 타점 OPS 모두 팀 내 정상, 특히 OPS는 두산 포함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 중 1위에 올랐다.

이병규과 이와 같은 활약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새로 부임한 양상문 감독의 절대적 지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양 감독은 6월 3일 “병규는 이전부터 흥미롭게 지켜봐온 타자다. 충분히 삼성 최형우와 같은 활약을 할 수 있다고 봤다. LG가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키 플레이어 중 하나다. 잠실구장이 아닌 다른 구장을 사용했다면 훨씬 전부터 대형타자로 더 주목 받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후 이병규는 클린업에 배치됐다. 덧붙여 수비 위치도 고정됐다. 양 감독은 이병규가 부담을 느끼는 1루 대신 외야만 보게 했다. 그리고 8월 3일 양 감독은 “내년과 후년에도 병규를 4번 타자로 고정시키려 한다. 우리 팀의 4번을 맡아줄 타자는 이병규가 아닌가 싶다”며 이병규를 4번 타자로 낙점했음을 알렸다.
LG가 4년 동안 4번 타자를 찾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양 감독의 발언은 파격적이었다. LG는 2009시즌 114경기를 4번 타자로 출장했던 페타지니 후 진정한 4번 타자가 없었다. 시즌별 4번 타순 최다 출장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2010시즌에 이병규(9번)가 60경기, 2011시즌에 박용택이 86경기, 2012시즌에 정성훈이 94경기·2013시즌에는 정의윤이 55경기서 4번 타순에 배치됐었다. 2010시즌부터 한 시즌에 4번 타자로 100경기를 넘게 뛴 이가 없을 정도로, LG는 진정한 4번 타자를 키우거나 찾는 데에 실패해왔다.
“걱정 마. 내가 점수 내줄게”
LG 선발투수 류제국은 ‘이병규 광팬’을 자처한다. 류제국은 “내가 선발 등판할 때면 이따금씩 병규가 와서 자신 있게 점수를 뽑아주겠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병규가 타점을 올린다. 병규가 우리 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고 웃으며 이병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사실 이병규는 양 감독과 류제국 외에도 많은 야구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완성도 높은 스윙은 물론, 파워와 선구안이 조화를 이루며 타석에서 그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마치 포수 미트 앞에서 공을 때릴 정도로 타격 포인트가 뒤에 있다. 공을 길게 보고, 강한 힘을 이용해 장타를 날린다. 때문에 이병규는 통산 기록에서 좌타자임에도 좌측 타구의 비율이 36.6%로 가장 높다.(우측:35.4%, 가운데: 28%)
물론 하루아침에 이병규의 타격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전임 김기태 감독과 김무관 타격코치는 이병규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타석에서 적극성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했다. 공을 너무 보려고만 하다가 유리한 카운트서 칠 수 있는 공을 놓치곤 한다는 이야기였다. 2012시즌까지 이병규는 볼넷을 골라 출루할 때도 많았지만, 찬스에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 공에 스탠딩 삼진으로 물러나는 경우도 자주 나왔다. 실제로 이병규는 데뷔 후 2012시즌까지 타석에서 스윙 비율이 6.6%·루킹 스트라이크 비율 20.2%를 기록했다.(2014시즌 규정 타석 채운 타자 기준 평균:7.8%·17.6%) 김기태 감독과 김무관 코치의 조언을 들은 2013시즌에는 스윙 비율이 10.8%까지 올라갔다.
2014시즌 스윙 비율이 6.8%로 내려갔는데 이병규는 이를 두고 “이전에는 감에 의존한 타격을 많이 했다. 이런저런 스타일로 타격을 하다가 내 타격 포인트를 찾았고,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타격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타격은 심리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타구를 한 번이라도 날리면 그 감이 상당히 오래간다. 감독님께서 기회를 꾸준히 주시는 만큼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오래 유지하게 된 게 좋게 작용하는 듯싶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이병규가 팀의 중심으로 자리하기 전까지, LG에는 좀처럼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다. 상대 투수는 이병규(9번) 박용택 정성훈 이진영의 베테랑 중심 타선만 잘 넘어가면, 하위타순은 편하게 상대했다. 그러나 마침내 LG는 꽤 긴 시간을 함께할 4번 타자를 찾았다. 현재 애리조나서 스프링캠프를 지휘하고 있는 양상문 감독은 이미 2015시즌 4번 타자를 이병규로 정했다. 9개의 타순 중 가장 중요한 4번 타자 자리에 가장 먼저 주인이 들어선 것이다. 잠실구장에 9번만큼 7번 유니폼도 많이 보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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