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사랑과 노래에 흠뻑 취한 청춘들의 화양연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2.04 07: 2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뜻의 불어 ‘쎄시봉’은 영화에서 두 가지로 각각 기능한다. 1960년대 청춘을 대변하는 무교동 음악 감상실이라는 공간적 존재가 첫째이고, 용광로처럼 가장 뜨거운 열정과 가슴 시린 첫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화양연화 같은 시간으로도 읽힌다.
전작 ‘열한시’의 실패로 모처럼 쓴맛을 봐야 했던 김현석 감독은 와신상담 후 망설임 없이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장르와 사랑 이야기로 재기를 노렸고, 이 계획은 어느 정도 적중한 듯 보인다. 대박이라는 소문에 비해 후반부 드라마의 완급 조절과 결말을 놓고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알맹이 튼실한 상업 영화라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흥행에 대한 지나친 강박 때문이었을까. 남녀 주인공이 40대로 옷을 갈아입은 뒤부터 하강 곡선을 긋는 극적 긴장감과 개연성 부족한 드라마는 두고두고 아쉽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건축학개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점 역시 감독에겐 불운하고 아픈 대목이다.

그럼에도 ‘쎄시봉’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본가 출신이기도 한 감독의 상상력이 빛나는 영화다. 송창식 윤형주의 전기 영화가 아닌 트윈폴리오에 제3의 멤버가 있었고, 이들 사이에 추앙받는 한 여인을 가공인물로 내세우며 로맨틱 멜로의 뼈대를 근사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한 남자의 희생과 순애보, 대마초 수사를 둘러싼 멤버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얽히며 몰입도를 높여나간 솜씨도 조악하지 않았다.
8명의 배우들은 누구 하나 뒤처지거나 튀지 않는 고른 연기로 하모니를 이뤘다. 이런 영화에서 평균 점수를 까먹는 연기자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톤 앤 매너와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질 텐데 누구하나 낙오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인상이다. 특히 기대치가 낮았던 송창식 역의 조복래는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노래 실력까지 겸비해야 해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를 상대로 오디션을 본 감독의 노련함과 정성이 돋보인 캐스팅이었다.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캐릭터를 반복 재생했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정우는 자신 있는 노래와 달리 서툰 사랑과 좌절에 감격하고 괴로워하는 휘청거리는 청춘 오근태를 부족함 없이 보여줬다. 늦은 밤 옥상에서 전화에 대고 부르는 세레나데와 그녀와 단둘이 마주한 텅 빈 무대에서 마치 주술에 걸린 듯 고백하는 모습은 잔상을 남길 장면들이다. 드라마와 ‘쎄시봉’ ‘히말라야’까지 세 작품 모두 CJ와 인연을 이어가는 모습도 이채롭다.
이 영화가 남녀노소 모든 이들을 만족시킨다면 아마도 흥행 마중물 역할을 한 키맨은 한효주일 것이다. 전도연 임수정을 잇는 간판 여배우로 왜 한효주가 늘 첫 손가락에 꼽히는지 스스로 증명해냈다. 근태의 순수한 사랑 고백을 받고도 이를 외면한 채 현실과 타협해버리는 민자영을 도무지 미워할 수 없게 만든 건 감독의 정교한 디렉션뿐 아니라 한효주의 숲을 보는 작품 분석과 풍부한 감성, 표현력의 화학작용 덕분일 것이다.
이장희와 오근태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민자영의 선택과 태도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음에도 영화는 민자영으로 인해 낯설어지거나 이물감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왠지 저 시절에도 저런 여자가 실제로 있었을 것 같은 묘한 기시감과 생동감이 동시에 전해지는 건 오롯이 한효주의 연기력 때문이다. 부록처럼 따라오는 사랑의 혹독한 대가와 허망함을 일찌감치 간파한 민자영은 한 남자를 지독하게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뒤늦게 자책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40대 오근태와 민자영을 연기한 김윤석 김희애의 미국 재회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면서 가장 많은 아쉬움이 드는 지점이었다. 오근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민자영은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 때문에 애를 태우고, 오근태 역시 20년간 굳게 닫아뒀던 마음의 빗장을 열면서 공항 탑승교에서 풀썩 주저앉아 오열하고 만다. 국제선과 국내선으로 둘의 엇갈림을 극대화하고 결정적인 순간 무심한 듯 읊조리는 오근태의 저음 대사가 보는 이의 감정을 고조시키긴 하지만, 절제가 강조돼서인지 화룡점정이나 카타르시스로 옮겨 붙지는 못했다는 인상이다.
‘쎄시봉’의 아홉 번째 주연배우는 다름 아닌 그 시절을 풍미한 주옥같은 포크송이다.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익’은 사연 많은 탄생 비화까지 그려져 청각적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저작권 때문에 삽입곡 사용료에만 6억 원을 써야 했다. 15세 관람가로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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