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영화의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갈 작품이 탄생했다. 향후 스파이 영화를 만들 감독들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작품이다.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감독 매튜 본, 수입 이십세기폭스코리아)다.

영화는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웠다. 젠틀맨 스파이 그룹의 유능한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와 젠틀맨 스파이에 도전하는 에그시 프라이스(태런 애거튼)이다. 해리는 빈민가에서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에그시를 거둬 킹스맨 면접에 참여시킨다. 에그시는 위험천만한 면접을 보면서 잠재돼 있던 탁월한 재능을 찾아가고, 해리는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악행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해리가 스파이 영화의 정석으로 전반부를 끌고 간다면, 에그시를 통해선 일종의 성장담을 볼 수 있다.

# 스파이 영화의 공식 비틀기
'킹스맨'은 감각적이고, 유쾌하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만큼 기발하다. 스파이 영화, 나아가 기존 영화의 공식들을 비트는 B급 감성이 전반적으로 녹아있다. 격조 있는 만찬 자리를 채우는 맥도널드 해피밀, 잔인하지만 피가 없는 후반부 폭발 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스파이 영화에서 볼 수 없던, 기존 질서와 체제에 대한 저항 역시 '킹스맨'의 특징이다. 해리와 에그시로 상징되는 계급 사회,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오바마 미대통령과 백인우월주위 집회 장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타파되면서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스파이 영화의 미덕은 놓치지 않았다. 나름 논리적인 명분을 지녔으며 악당 주제에 욕설과 폭력을 싫어하고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발렌타인이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매력적이나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 가젤(소피아 부텔라), 록시(소피 쿡슨)이 등장한다. 대부분 스파이들이 미인에 약했듯 에그시 역시 이런 기질을 지니고 있다.

# 새로운 액션신의 등장
'킹스맨'엔 신선하고 경쾌한 액션 시퀀스가 가득하다. 마치 '이런 액션신은 본 적 없지?'라고 되묻는 듯하다. 상당히 잔혹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신나는 배경음악에 만화적으로 풀어내 잔인함을 덜어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곁들여진 후반부 폭발 신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전례 없는 장면이다.
각 인물들의 액션은 스타일리시하게 그려진다. 한때 체조 유망주였던 에그시는 아크로바틱한 몸동작을 선보인다. 두 발에 칼을 찬 '인간 병기' 가젤은 무용과 브레이크 댄스를 결합된 액션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베테랑 요원 해리는 장대 우산 등 고전적인 외양의 최신식 무기를 이용해 절제된 액션을 보여준다.
후반부 교회에서 펼쳐지는 1대 다수 액션신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영감을 받았다. 총 3분 44초인데, 실제로 원 신, 원 테이크로 촬영됐다. 해리 역의 콜린 퍼스가 이를 위해 수개월 간 트레이닝을 했을 정도로 공들인 장면이다.
# 정장 입은 콜린 퍼스의 액션만으로
'킹스맨'은 콜린 퍼스의 첫 액션 영화다. 콜린 퍼스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영화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콜린 퍼스는 등장하는 내내 고급 정장을 입고 있고, 심지어 긴박한 액션 장면에서도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턴불앤아서 셔츠, 드레이크 넥타이, 조지 클레버리 구두 등 고급 브랜드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그의 대사는 외양과 내면 모두를 중시하는 킹스맨을 대표한다.
콜린 퍼스 외에도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무엘 L. 잭슨은 형형색색의 스냅백을 사랑하는 힙합퍼 악당으로 분해 혀짤배기소리를 낸다. 젠틀맨 스파이 그룹의 수장 아서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막바지에 반전을 선사한다. 소년에서 신사가 되는 주인공 에그시 역의 태런 애거튼이나 무자비한 액션과 의외의 재치를 보여주는 가젤 역의 소피아 부텔라 등은 새로운 얼굴이다.
1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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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