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가 시청률 20% 돌파를 목전에 두며 ‘욕하면서 보는’ 임성한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하고 있다. 초반 잠잠했던 발걸음에도 불안했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리는 카드는 이번에도 ‘죽음’이었다.
인간의 삶을 덧없게 보는 듯한 운명론을 다루며 안방극장을 불편하게 만드는 임성한은 이번에도 허망한 죽음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동시에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행복한 결혼식을 치른 새 신랑 조나단(김민수 분)이 조폭과의 시비 끝에 비명횡사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언제나 잡음을 일으켰던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 동시에 ‘압구정 백야’는 연일 자체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고 있다. 논란이 발생할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임성한 흥행법칙’이 눈 앞에서 또 벌어졌다.
그가 출시하는 기괴한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엇갈린다. 시끄러운 잡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조차도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일단 드라마는 재밌기 때문에 보게 된다는 ‘지지 세력’이 있다. 극명한 호불호는 그 어떤 작가의 드라마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보통 방송사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데, 임성한 작가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시끄럽지만 매번 드라마 시장의 러브콜을 받는다. ‘보고 또 보고’, ‘온달 왕자들’,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공주’까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들이 줄을 잇는 드라마로 언제나 인기를 누렸다.

왜 이런 드라마를 방송사에서 내보내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시청자의 목소리가 거세지만, 늘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일단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만들고, 드라마에 파묻혀 사는 PD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상파 3사 드라마 PD들에게 고견을 들었으나, 익명을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어찌 됐든 숱한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이유로 들었다.
일단 PD들은 대체적으로 임성한의 드라마가 독특한 설정으로 기반하기 때문에 흥미가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 PD는 “논란을 만드는 설정이나 자극적인 막장 전개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면서 “물론 이 같은 전개가 드라마 작품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지만 이를 떠나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을 쓰는 것은 맞다”고 평가했다.
이 PD는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 대사와 우연이 반복되는 설정, 비현실적인 인물 관계가 낯설면서 새로운 재미가 있어 보게 되는 것 같다”면서 “이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느냐 나쁜 영향을 끼치느냐와 관계 없이 일단 재미있으니깐 계속 드라마가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PD는 “임성한 작가는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섬세하게 그린다”면서 “그 작가만의 독보적인 대사의 맛이 있다. 작가로서 고유한 세계관과 인간관이 있고 ‘선수’로서 기술과 자신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PD는 “이야기에 인물을 우겨넣거나 인간성을 무시하지 않고 인물에 충실하게 드라마를 전개하는 좋은 작법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건을 전개하거나 인물을 만나게 하기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로서 우연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으로 보이게 하는 당당함이 있다”라고 우연이 많이 발생하지만 그 우연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PD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이었다. 개연성 없는 전개, 그리고 시청자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통행을 밀어붙이는 구조를 비판했다. 한 PD는 “파격을 문제삼을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시청자를 설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 마음대로 글을 쓰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청자가 납득할 수 없게 등장인물을 죽이고 있다”면서 “이는 배우를 꼭두각시로 사용하는 것이다. 작가가 전지전능한 접근으로 글을 쓰는 것은 한국 연속극 시장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시청자에게 볼 테면 보라는 식의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임성한 작가가 점점 드라마를 자극적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감정을 비상식적으로 일으키는 장면이 선정적이고 극성이 극대화 돼 있다. 감동과 재미가 없는 불량 식품이라 국민 정서를 해친다고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성한이 내놓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장르로 보고, 작가로서의 필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PD는 “일상성과 극성, 우연과 필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배짱 좋게 시청자와 밀당(밀고 당기기)하는 연속극의 장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드라마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소중한 작가다. 작가 지망생들도 선입견 버리고 임성한 작가의 대본 진지하게 공부하면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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