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으면 살아난다. 시청률도 오른다. 명성과 혹평을 동시에 얻는 기묘한 여인이 바로 임성한 작가다.
임성한 작가는 지난 1990년 KBS '드라마게임-미로에 서서'로 데뷔해 한동안 단막극을 집필했다. 최근 작품을 통해 '막장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얻긴 했지만, 임성한 작가의 초기 작품에는 충격은 있을지언정 비공감적이지는 않았다. 25년째 작가로 활동 중인 임성한 작가는 1997년 MBC '웬수', '두여인', '가시버시' 등 몇차례에 걸쳐 단막극 작업을 하다가 이듬해 1998년 '대박 작품'을 쓰며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단막극 작업을 한 지 1년 만에 거둔 대성과였다. 임성한 작가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그 초기 작품은 바로 '보고 또 보고'다. 이 작품은 1998년 3월부터 약 1년간 방영된 드라마로, 일일드라마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57.3%를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보고 또 보고' 역시 자매가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며 겪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좌충우돌의 에피소드와 그 안에서 겪는 갈등을 담아 호평을 이끌어냈다. 지금같아서는 자매가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 흔한 소재이지만, 당시만해도 이러한 설정은 신선한 시도였다.
임성한 작가는 '보고 또 보고'로 물꼬를 튼 뒤, 줄지어 대박 작품을 써내려 갔다. '온달 왕자들'에 이어 '인어 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 '아현동 마님', '보석비빔밥',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쓰며 매 작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임성한 작가의 저력은 시청률 면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그가 쓴 작품들은 눈에 띄지 않는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이내 30%를 훌쩍 넘어서며 경쟁작의 기를 단번에 죽였다. 이후 임성한 작가는 스타 작가라는 수식어를 꿰찼고, 방송국에서 역시 그의 작품이라면 서로 가져가려는 눈치싸움까지 벌여야만 했다.


임성한 작각의 작품에는 매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논란은 있을지언정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있기에 시청자들의 리모콘을 붙잡았던 그지만, 작품의 수가 늘어날 수록 자극적인 대사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대사, 극 중 인물들의 마인드는 점점 임성한 작가의 진정성에 화살을 꽂았다. 사실 큰 인기를 끌었던 '보고 또 보고'부터 논란의 역사는 시작된다. 겹사돈이라는 소재는 당시 논란이 됐고, 계속된 방송 연장은 뭇매를 맞는 계기가 됐다. '온달 왕자들'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보지 못할 소재로 충격을 안겼다. 4번 여자를 만나 4명의 자식을 뒀다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 이후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언론으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신기생뎐'에서는 등장인물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시도때도 없이 귀신들이 등장하는 등 과도한 설정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오로라공주'부터는 '데스노트'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뜬금없이 죽어나가며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기 때문. 이쯤부터였을까. 시청자들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욕하면서 본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임성한작가는 여전히 방송가에서 스타 작가로 대접받는다. 어찌됐든 시청률 면에서 무시하지 못할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이며 극 중 인물들의 대사 하나 하나에는 사실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는 대사도 향후 스토리에 잔뼈들이 되는 것이 임성한 작가만의 필력이다. 대개 타 작가들이 큰 틀을 놓고 이야기를 쓴다면, 임성한 작가는 대사 하나하나를 모아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에 임성한 작가의 편성을 하는 방송가에서는 그의 '막장'이라는 단어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한 드라마 PD는 "인물의 입장과 욕망에 근거한 행동과 감정의 디테일이 뛰어나고 독보적인 대사의 맛이 있다. 작가로서의 고유한 세계관과 인간관이 있고 선수로서의 테크닉과 자신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해당 PD의 말처럼, 임성한 작가는 독특한 인간관이 있기에 단순한 대사도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대사들이 이해 불가한 상황 속에 녹아날 뿐, 대사만 떼어놓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질 때도 종종 있다.
사실 드라마판에 다들 비슷한 성향의 작가들이 모여있다면 개성은 사라질게다. 여러 별칭을 가지고 있는 임성한 작가의 독특한 장면들과 대사, 필력은 선입견을 빼고 본다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하는 훌륭한 공부가 될 수 있다. 삶 속에 있는 막장 요소를 극대화했을 뿐 우연과 필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능력은 임성한 작가만의 실력이기도 하다. 이에 항상 그의 작품에는 논란이 뒤따르지만 욕을 먹을 수록 시청률은 자연히 따라 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 일부 장면들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는 욕 먹으면 더욱 살아나는 그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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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