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말. FA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좌완 선발투수 장원준(30)이었다. 장원준은 SK 최정과 함께 시장 최대어로 꼽혔고, 최정과는 달리 전 소속구단 롯데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우선협상 마감일인 11월 26일이 지나자 롯데는 LG나 한화가 장원준을 노리고 있다며 노심초사했다.
롯데의 예상은 틀렸다. 장원준은 LG도, 한화도 아닌,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LG와 한화 모두 장원준 영입을 계획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장원준의 몸값은 두 팀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롯데는 장원준과 협상이 결렬되면서 장원준에게 역대 FA 최고 금액 4년 88억원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LG나 한화가 장원준을 데려오기 위해선 최소 80억원은 들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장원준은 11월 29일 두산과 4년 84억원에 계약을 체결, 역대 FA 투수 최고액 기록을 세웠다.
사실 LG와 장원준은 제대로 된 만남조차 없었다. LG 구단은 일찍이 두산이 장원준 영입에 시동을 걸었다는 것을 파악했고, 제시액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도 알았다. 협상 시작일인 11월 27일에 이미 반 쯤 백기를 든 상태였다.

LG는 스토브리그의 강자였다. 1999년 겨울 FA 제도가 신설된 후 꾸준히 대어를 영입해왔다. 홍현우 진필중 박명환 이진영 정성훈 등과 FA 계약을 체결,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약점을 메우려 했다. 그런데 최근 6년은 조용하다. 2012년 겨울 정현욱을 데려온 것 외에는 큰 사건이 없다. 2013년 겨울에도 LG가 장원삼과 강민호을 노린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장원준과 마찬가지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양상문 감독은 장원준의 두산행이 확정된 후 “5년 후에는 장원준을 데려오지 못한 게 잘 됐다고 느낄 것이다”며 전화위복 의지를 보였다. 덧붙여 “장원준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우리 투수들 모두 선발투수 두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안다. 그만큼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에서 장원준을 키운 것처럼, LG에서도 장원준과 같은 선발투수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이다.
거액의 FA 계약은 없지만, 그렇다고 LG 그룹의 야구단 지원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LG 그룹은 지난해 7월 토지 매입 포함 약 1200억원을 들여 경기도 이천에 최신식 2군 시설, ‘LG 챔피언스 파크’를 지었다. 세계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챔피언스 파크를 통해 신예선수 육성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구리 시절 붙었던 ‘유망주 무덤’이란 오명을 반납하고 1·2군 선순환을 바라본다.
챔피언스 파크가 문을 연지 이제 겨우 반 년. 그런데 벌써부터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챔피언스 파크에서 선수들과 상주하고 있는 2군 코치들은 지난 10월에 들어온 신인선수들의 성장속도에 놀라움을 표한다. 신경식 타격 코치는 “재작년에 들어온 선수들보다 작년 10월에 들어온 올해 신인들이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봤는데 이천과 구리의 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도 정말 많이 놀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신 코치는 “구리에서 1군 선수를 만드는 데 5년이 걸린다면, 여기서는 2, 3년이라고 본다. 선수 성장은 결국 훈련량에서 좌우되기 마련이다. 이천은 구리보다 3, 4배 더 훈련 할 수 있다. 구리는 야간 훈련도 안 되고,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30분 거리였다. 여기는 얼마든지 남의 눈치 안 보고 개인 훈련할 수 있다. 선배든 후배든 넓은 공간을 활용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구리에선 훈련을 많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여건인데 이 곳은 다르다. 선수와 코치들이 한 건물 안에서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맨투맨 지도가 가능하다”고 빠른 성장의 원인을 분석했다.
실제로 챔피언스 파크는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종류의 야구 훈련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숙소와 실내연습장, 웨이트 트레이닝룸, 식당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날씨가 덥던 춥던, 최대 규모 실내연습장에서 언제든 배트를 휘두르거나 공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이다.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최신 시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그야말로 ‘야구 천국’이다.
LG의 목표는 ‘꾸준한 강팀’이다. 활발한 신예육성을 바탕으로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이 되려고 한다. 이를 위한 장기 플랜도 세웠다. 애리조나 캠프에서 벌어지는 포지션별 경쟁구도와 2군 선수들의 성장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먼저 LG는 선발투수진 새 얼굴을 발굴하기 위해 주로 2군에 있었던 선수들을 대거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시켰다. 지난해 1군에서 선발 등판한 임정우 임지섭 장진용은 물론, 김지용 유경국 이승현 최동환 전인환 한희 이창호가 애리조나서 땀을 쏟고 있다. 내야진에선 대졸 신인 박지규와 거포 가능성을 인정받은 최승준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다. 외야진은 포지션을 전향한 김용의와 문선재, 지난해 1군 무대서 잠재력을 뽐낸 채은성이 선배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포수진은 주전 포수 최경철을 제외하면 모두 20대 이하다. 유강남과 조윤준, 그리고 고졸 신인 김재성까지 미래 주전포수 마스크를 노린다.
2군도 마찬가지다. 비록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1군서 콜업 신호를 보낼 선수들이 많다. 김광삼 윤요섭 신승현 이상열은 오는 10일부터 시작하는 대만 캠프를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여기에 2년차 3루수 양석환, 올해 고졸 신인 중견수 안익훈도 2, 3년 내로 1군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투수진에는 좌투수 정다흰, 우투수 조학진과 배민관이 기대를 받고 있다.
내부육성 없이는 명문구단이 될 수 없다. FA 영입이 응급처방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효과가 영원하지는 않다. 양상문 감독은 1군 스프링캠프를 떠나기에 앞서 챔피언스 파크서 전체 코칭스태프 1박 2일 워크샵을 열었다. 워크샵에서 코치들은 지도계획 리포트를 양 감독에게 제출했고, 양 감독은 코치들과 리포트를 검토하고 논의했다. 챔피언스 파크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확립, 1군과 2군 모두 뚜렷한 계획 아래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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