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면 야구가 나왔다. 그런데 모르는 선수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자신과 함께 야구를 했던 동기들은 승승장구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위치는 초라했다. 군인의 신분이었다. 그럴수록 의지를 다졌다. 김태훈(25, SK)은 “좌절감이 들기보다는 욕심이 생기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욕심은 김태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SK의 기대주 중 하나인 김태훈은 지난해 군 복무를 끝내고 팀에 합류했다. 지금은 강화도의 SK 드림파크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운동을 하지 못했던 기간이 있어 아직은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진용이나 박종훈과 같은 ‘제대 동기’들에 비해서는 페이스가 더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욕은 남들 못지않다. 코칭스태프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올해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칭찬할 정도다.
김태훈은 한 때 SK 최고 유망주 중 하나로 손꼽혔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빠르고 묵직한 공을 던지는 좌완이었다. 고교 시절 이뤘던 ‘퍼펙트’ 경력은 근사한 포장지였다. 그렇게 2009년 신인지명회의에서 SK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부상이 번번이 김태훈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갔다. 김태훈은 “이제는 안 아프고 싶다. 매년 부상으로 재활을 했었다”라고 떠올렸다.

결국 2010년부터 3년 동안 1군에서는 26경기 등판에 그쳤다.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5.74를 기록하고 군에 갔다. 그리고 군 복무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김태훈이다. 다시 프로야구 무대에 설 날을 생각하며 간절함을 키웠다. 그리고 절박함도 커졌다. 김태훈은 “군에 가기 전까지는 ‘군대에 가면 된다’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갈 곳이 없다. 독하게 야구에 임하고 있다”라고 생긋 미소를 지었다.
현재 상태는 좋은 편이다. 워낙 운동을 열심히 한 덕에 몸 상태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픈 곳이 없다는 점이다.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김태훈의 표정이 좋아진 이유 중 하나다. 김태훈은 “코치님들이 시키는 대로 운동을 했다. 현재는 70~80%의 힘으로 공을 던지는 수준이다. 한 번에 50개 정도의 공을 던진다”라고 근황을 설명했다.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체력과 밸런스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태훈은 140㎞ 중·후반의 빠른 공을 던지는 매력 있는 투수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욕심을 낼 법하다. 하지만 기초 체력부터 천천히 다지고 있다. 김태훈은 “아무래도 야구를 한 기간이 있다 보니 기술훈련은 쉬어도 금방 올라온다. 지금은 밸런스부터 맞추고 체력 보강을 위주로 운동을 하고 있다”라며 서두르지 않을 뜻을 드러냈다. 그래도 순조로운 상태에 희망은 커진다. 김태훈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개막을 즈음해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절박함을 찾아 독해진 김태훈의 올해 목표는 소박하다. 김태훈은 올해 목표를 묻는 질문에 “경기에만 꾸준히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최종 목표가 그것이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다. 김태훈은 계속된 재촉에 “하나하나씩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경기에 꾸준히 나가는 목표를 이루면 그 다음은 1군 진입, 그 다음은 프로데뷔 첫 승”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어투에서는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SK는 한 때 왼손 왕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었던 선수들이 아프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통에 최근 2년간은 오히려 왼손이 기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태훈의 제대에 큰 기대가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구단이 바랐던 것처럼 김태훈은 한층 성숙하고 독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잠재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노력이다. 노력파의 이미지까지 갖추고 돌아온 김태훈이 잠재력을 폭발시킬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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