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누르면 극에 딱 맞는, 기대 이상의 표정이 나온다. 배우 박혁권이 같은 장면을 연기해도 느껴지는 맛이 다른 ‘표정 자판기’로 등극할 조짐이다.
박혁권은 현재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의도 무참히 저버릴 수 있는 검사 조강재를 연기하고 있다. 강재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는 이태준(조재현 분)의 신분 상승의 더러운 도구로 활용됐다. 후반 들어 태준과 강재의 사이가 틀어져버리면서 ‘펀치’의 재미를 확 높였다.
‘펀치’는 지난 9일 방송된 16회에서 강재가 태준을 배신하면서 태준과 박정환(김래원 분)의 갈등이 극대화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혁권의 ‘급이 다른’ 섬세한 ‘지질 연기’에 시선이 집중됐다. 그동안 드라마 속 검사는 선이든 악이든간에 근엄하게 표현됐는데, 강재는 한없이 얄팍하고 가벼운 인물이다. 박혁권은 캐릭터의 가벼운 속성을 부각시키는 화려한 표정 연기로 무장한 상태.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데 이 같은 변화가 불편하게 여겨지거나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흡인력을 높이고 있다.

강재는 지극히도 야비하고 이기적인 인물인데 그동안 성공을 위해 태준의 뒷바라지를 했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그 어떤 회유, 협박, 읍소에도 흔들림 없었다. 하지만 벼랑 끝 싸움에서 모든 것을 내던진 정환은 강재와 태준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질에 성공했다. 결국 강재는 태준의 비리와 태준의 죽은 형인 이태섭(이기영 분)의 살인 혐의를 증언했다.
태준의 뒤통수를 연달아 때리는 강재의 배신은 태준의 몰락을 바라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안겼는데 박혁권의 셀 수 없는 다양한 표정이 이 같은 통쾌함을 높였다. 어찌나 기억력이 좋은지 태준의 비리를 술술 불 때 나오는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은 입술까지 실룩거린다.
“너 심부름값 100원 받을 때 난 50원 받고 일했다”면서 정환의 7살 딸 박예린(김지영 분)마냥 칭얼거리는 귀여움은 “이럴 때 예린이는 어떻게 달래지?”라고 일격을 하는 정환의 무심한 표정과 대비되며 웃음보를 자극했다. 태준을 압박할 증거를 정환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역시 박정환이다”라고 촐싹맞게 웃는 지질함은 긴박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웬만한 예능프로그램보다 더한 재미를 안겼다.
또한 온갖 비리를 저질러놓고서는 대중 앞에서 “지난 20여년 국가에 헌신하고 사회의 불의와 맞서는 검사로서 한치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라고 말해놓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혼자 찔려서 머쓱해하고, 정환과 손을 맞잡아놓고도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에 불안해 또 다시 배신을 가하는 전초전인 흔들리는 눈빛, 자신을 버린 태준에 대한 서운한 감정에 마치 아기처럼 눈물을 흘리기까지. 이날 ‘펀치’는 강재의 오락가락하는 감정선과 이를 풍부한 표정 연기로 더 다채롭게 만든 박혁권의 연기가 드라마를 지배했다.
강재는 참 품이 넓지 않고 얕은 사람이다. 박혁권은 박쥐 같은 강재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시시때때 변화는 표정으로 캐릭터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강단 있게 상대방의 속을 긁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중하지 못해 요동치는 눈빛,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하게 움직이는 안면근육은 박혁권의 빼어난 연기력과 맞물리며 더욱 효과적으로 안방극장에 전달된다.
그토록 가벼운 인물인데 극에서 튀지 않고 과장되지 않는 것은 오롯이 배우의 힘. 박혁권은 현실 밀착형 연기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즐거운 구석을 강조하는 치밀한 연기로 악역인데 사랑받는 강재를 탄생시켰다. 지난 해 JTBC ‘밀회’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안방극장에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펀치’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란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혁권은 이 드라마가 끝난 후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순애보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악역을 벗고 선한 인물로 변신할 박혁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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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