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조재현 “귀마개 애드리브, 웃길까봐 걱정했다” [인터뷰①]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2.11 06: 59

배우 조재현(49)이 안방극장을 상대로 자장면 고문을 하고 있다. 그는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악역인데 정감이 가는 이태준을 연기하는 중. 자장면, 삭힌 홍어, 파스타 등을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하며 야밤 시청자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인생의 빛이 되어준 한 여자를 향한, 세상과 작별하는 한 남자의 뜨겁고도 절절한 마지막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그가 연기하는 이태준은 권력을 움켜쥐는 성공욕이 강한데, 가족애로 똘똘 뭉쳐 있어 마냥 미워할 수 없다. 더욱이 조재현의 진한 사투리와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 냉혹하면서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 인물 해석력은 이 드라마 인기의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조재현이 극중에서 먹는 음식은 드라마의 갈등 관계를 드러내는 묘미이자 시청자들의 식욕을 눈치 없이 자극하고 있다.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갈등 구조를 파악하는 요소도 재밌지만, 이를 맛깔스럽게 연기하는 조재현의 실감나는 ‘먹방(먹는 방송)’이 ‘펀치’의 또 다른 재미인 것.

“원래 자장면을 좋아하는데 촬영을 하다보면 새벽 1~2시에 이 장면을 연기해요. 여러 각도로 촬영을 하니깐 세 그릇씩 먹게 되죠. 그러면 배가 터지려고 해요. 이 드라마 하면서 살이 쪘네요. 하하하. 사실 자장면을 원래 좋아하기도 하지만 맛있게 먹어야 드라마가 살잖아요. 자장면 연기의 하이라이트는 국물을 마시는 거죠.(웃음)”
모두들 궁금해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자장면 먹는 장면에서 나오는 실감나는 소리일 터다. 그 어떤 음향 효과도 가미되지 않은 배우들이 실제로 먹는 소리다. 조재현은 극중에서 삭힌 홍어도 먹었다.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행히도 조재현은 홍어를 평소에도 먹는단다.
“어떤 기사를 보니 (김)래원이는 멋있게 먹고 조재현은 맛있게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성공한 사람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어릴 때 먹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태준은 가난했던 사람이니 음식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허겁지겁 먹는 연기를 했죠. 작가님이나 우리 세대 때는 자장면이 외식할 때 최고의 음식이었거든요. 탕수육이나 불고기는 생각도 못했어요. 저도 자장면이라면 정말 좋아했죠.”
‘펀치’는 첫 방송 당시 시청률 꼴찌였다가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이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의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시작부터 승승장구는 아니었다.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에는 이야기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초반 시청률이 낮았다. 허나 이 드라마는 극중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갈등 구조가 ‘마약 같은’ 드라마로 여겨졌다.
 
“처음부터 잘될 것이라고 기대를 했어요. 대본이 워낙 좋았거든요. 어떤 분들은 이 드라마가 안 될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를 비롯한 배우들은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일단 대본이 정말 재밌으니까요. 캐릭터들이 신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후반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쪽대본 체제였지만 그래도 금방 외워졌어요. 작가님이 머리로 쓰는 대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느낌이랄까. 대사 암기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고수가 ‘황금의 제국’ 때 인터뷰를 한 것을 봤어요. 다시 박경수 작가님과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더라고요. 속으로 왜 그런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는데 제가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10부부터 쪽대본이었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드라마가 워낙 재밌기 때문에 조재현도 대본을 받은 후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읽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대사를 외웠다. 현장에서 또 한 번 읽으면 대사가 머릿속에 박혔다. 배우 자신도, 그리고 옆에서 이를 지켜본 제작진도 신기해할 정도였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촬영 일정에도 몸이 고되지 않았던 게 대사가 쉽게 외워지는 박경수 작가의 입에 착착 감기는 생활 밀착형 대사 덕분이었다.
조재현은 드라마 출항 전 작가를 믿었다. 그리고 작가의 대본을 배우로 하여금 연기하게 만드는 이명우 PD를 믿었다. 작가가 펼쳐놓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감독이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재현은 ‘펀치’의 대본, 연출, 연기 세 박자 조합이 좋았다고 드라마 인기 비결을 꼽았다.
“사실 작가와 감독이 하나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 전형적일 수 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더 흥미롭게 표현된 것 같아요. 배우와 감독은 어떻게 보면 연애를 하는 거거든요. 어떤 배우가 어떤 감독과 계속 연기를 한다면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계속 하는 거거든요. 사실 감독님과 처음에는 살짝 맞지 않았어요. 재촬영을 두고 이야기를 오고가고 했으니까요. 초반에 살짝 맞지 않는데도 감독님을 믿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재현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태준이 악역이지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범위가 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밑도 끝도 없는 악역이 아니라 여지가 있는, 어딘지 당위성이 있는 악역이기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그가 생각한 당위성은 가족애였다. 형 이태섭(이기영 분)과의 형제애가 이태준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악한 행동을 하는데 논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논리가 형제애였죠. 형제애를 꽉 부여잡고 있으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예상대로 그 부분이 잘 살았고 그래서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태준은 기본적으로 불쌍한 사람이거든요. 스스로 성공하길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에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태준은 늘 자신이 지옥에 간다고 말을 해요. 어떤 악인은 어떻게든 천당 가려고 하잖아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거죠.” 
조재현은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정밀하게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즉흥 대사를 집어넣었다. 물론 감독과 상의를 한 후 극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배우의 생각을 표현했다. 화제가 됐던 귀마개 착용 장면도 그랬다. 조재현이 현장에서 제안, 감독이 받아들여 안방극장에 전달이 됐다. 박정환(김래원 분)과 태준이 심각하게 갈등하는 장면에서 태준은 커다란 털 귀마개를 착용했다. 이후 박경수 작가는 실제 대본에 정환이가 태준에게 귀마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을 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한강 둔치에서 촬영을 하는데 춥더라고요.(웃음) 귀마개를 낀 진짜 이유는 태준의 솔직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태준은 추우면 귀마개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감독님에게 말을 하고 귀마개를 가져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귀마개가 생각보다 너무 큰 거예요.(웃음) 내심 걱정을 했죠. 우스꽝스러워 보일까봐...작가님이 그 장면을 좋게 보셨나봐요. 그래서 또 대본에 나왔죠. 이런 애드리브는 현장에서 다 상의를 해요. 작가님의 고유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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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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