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49)은 작품의 맛을 살리는 즉흥 대사를 할 때 적절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배우다. 작가가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만든 대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에서 자신이 연기를 하며 생각나는 감정에 대해 감독과 많이 이야기를 하며 소통을 한다.
현재 이태준으로 열연 중인 SBS 월화드라마 ‘펀치’도 그렇다. 그는 가끔 박경수 작가가 정교하게 만든 갈등 구조와 섬세한 인물 묘사를 더욱 멋스럽게 만드는 즉흥 대사를 구사한다. 감독과 상의한 후 즉흥 대사를 소화했다가 막상 연기를 해본 후 철회한 경우도 있다. 즉흥 대사라고 해도 극에서 튀지 않게 대사와 대사 사이에 딱 한 단어를 넣거나, 어떤 말을 약간 다르게 표현하는 식이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고 애드리브를 하죠. 작가님이 현장에 오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여쭤봤어요. 작가님께 놀라지 않았냐고 여쭤본 적 있죠. 아니라며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는 ‘태준이가 삭제를 누르겠습니다’라고 흥얼거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애드리브였어요. 애드리브인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요.(웃음)”

작가의 의도와 조재현의 연기 해석(?)이 달랐던 웃긴 일화도 있다. 이태준이 동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민요 ‘새야 새야 파란 새야’를 부르는 부분이다. 조재현은 다소 촐싹 맞게 불렀는데 음 자체가 달랐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형 잘못 부른 것 아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시는 것을 들은 적 있거든요. 그래서 맞다고 했죠. 알고 보니 그 음이 아니었어요. 저희 할머니가 음치가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 음치 맞거든요.(웃음)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경쾌하게 불러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틈만 나면 부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펀치’는 유독 카메라를 당겨서 찍는 ‘클로즈업’이 많다. 배우들의 표정 변화가 세밀하게 담긴다. 제작진의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클로즈업’은 ‘펀치’ 등장인물들의 요동치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 시청 집중력을 높인다. 다만 연기를 못하거나, 아니면 외모에 신경을 쓰는 배우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저는 드라마에서 클로즈업이 좋더라고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잘 보이니까요. 사실 검찰총장이라면 제 나이보다 10살은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피부가 거칠게 나오고 흰머리가 그대로 보여야 맞다고 생각해요. 외모는 신경 안 써요. 사실 배우가 자기 나이에 맞게 보여야죠. 너무 어려보이면 안 되죠. 저도 예전에 한 번 지인이 공짜로 보톡스를 놔준다고 해서 맞아본 적이 있어요. 딱 한 번이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안 어울리더라고요.(웃음)”
‘펀치’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즐비해 있다. 조재현을 시작으로 김래원, 최명길, 박혁권 등 드라마를 이끄는 배우들이 한결같이 소름 돋는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연기 대결을 하는 것 같다는 농담도 한다.
“저희는 한 번도 대결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서로의 연기가 도움이 되는 거고 소통을 하고 호흡을 맞추는 거죠. 최명길 선배를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사실 최명길 선배가 완벽하게 보이는 인상이잖아요. 차가워보일 수 있는데 제 상상을 깼죠.(웃음) 수더분하고 의외로 구멍이 많은 분이에요. 윤지숙 장관처럼 꽉 짜여있는 사람이 아니죠. 잘 웃는 분이에요. 만날 농담으로 이러다가 정들 것 같다고 이야기해요. 극중에서 우리 부부 같지 않아요?(웃음) (김)래원이는 오랜 만에 만났더니 정말 연기가 좋아졌더라고요. 뭔가 연기가 신나서 작품을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혁권이는 상대 배우의 연기에 대한 리액션이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함께 연기를 하고 싶은 배우예요.”
조재현이 꿈꿔보는 ‘펀치’ 결말은 무엇일까. 아직 드라마의 끝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종영까지 단 2회만 남은 ‘펀치’는 윤지숙(최명길 분) 장관이 벼랑 끝에 몰려 정환의 아내인 신하경(김아중 분)을 죽이려고 하는 듯한 이야기로 17회가 마무리되며 시청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현재 정환은 태준에게 강력한 ‘펀치’를 맞아 더 이상 태준을 끌어내릴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상태. 남은 2회 동안 정환과 하경이 태준과 지숙을 어떻게 무너뜨릴지가 관건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가상이잖아요. 희망을 안겼으면 좋겠어요.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우리 드라마에 늘 나오잖아요. 정환이의 딸 예린이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말, 희망을 주는 결말이었으면 좋겠어요. 벌 받을 사람 벌 받았으면 좋겠어요. 태준이가 개과천선하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우리 드라마가 그동안 해온 이야기가 있으니깐 동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세상이 바뀐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어요. 해피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세상에 어떻게 사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게 끝났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니깐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조재현은 이번 드라마에서 태준이라는 인물에 완벽하게 몰입한 연기로 호평세례를 받았다. 워낙 그의 배우로서의 진가가 다시 한 번 조명된 작품이기도 했지만 조재현에게 ‘펀치’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연기에 있어서 다시 자유로움을 찾은 것 같아요. 사실 사극을 할 때는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한다는 중압감이 있거든요. 이 캐릭터는 중압감이 없었어요. 연기적으로 제가 활기를 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죠. 배우들과 그리고 감독님, 작가님과의 조합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재밌게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시청자들이 좋게 평가해주시고 인터넷에 좋은 글을 많이 남겨주셔서 재밌게 연기하고 있어요. 제가 취미가 인터넷 댓글 보는 거거든요.(웃음)”
조재현은 지난 해 KBS 1TV 사극 ‘정도전’으로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후보였다. 대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드라마 3사 PD가 뽑은 프로듀서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펀치’로 조재현은 또 한 번 큰 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해 상을 많이 받았어요.(웃음) 상은 받으면 물론 기분이 좋죠. 집에 고이 갖다놓아요. 올해는 못 받을 것 같은데요? 지금 2월이니깐 다른 작품들이 나오겠죠.(웃음)”
조재현은 SBS 새 예능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가제)에 딸과 함께 출연한다. 출연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일상을 담는 관찰 예능인데다가 연기자의 길을 걷는 딸이 자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사실 딸이 연기를 한다고 해서 제가 연기를 조언하는 게 어렵거든요. 공부하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겠지만 연기는 제가 환경을 만들어줄 수는 없잖아요. 이번에 예능 출연도 많이 고민을 한 부분이 딸이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아무래도 저와 나오면 (연기자가 아닌 조재현의 딸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많이 고민을 했죠. 그래도 출연을 결정한 것은 딱 하나의 이유예요. 제가 예능에 나와서 가족을 팔아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딸과 아빠는 아무래도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변화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출연을 하게 됐어요.”
조재현은 ‘펀치’ 종영 후에도 바쁘다. 현재 출연 중인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 지방 공연도 다녀야 하고, 학교 수업도 해야 한다. 당분간 작품 활동은 쉴 예정인데, 여전히 많은 작품의 ‘러브콜’을 받고 있어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개인적인 시간을 갖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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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